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2년을 이끌어온 파워엘리트의 면면을 보면 견제와 균형, 외연(外延)의 확장이라는 두 흐름이 드러난다. 한 세력이나 실세에 힘을 몰아주지 않으면서, 한편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인물들을 충원, 소수정권의 기반을 확대하려 했다.정권 초기에는 화합이라는 명분 아래 외연의 확대가 중시됐다. 초대 내각의 절반을 공동정권 파트너인 자민련에 할애했고 청와대 비서실장에 구여권 출신인 김중권(金重權)씨를 발탁했다. 이종찬(李鍾贊)국정원장 김태정(金泰政)검찰총장 천용택(千容宅)국방장관 등도 야당의 정통 인맥과는 거리가 먼 인사들이었다. 당시 이들의 부상을 비유, 신주류라는 조어가 생겨났다. 당도 조세형(趙世衡)총재권한대행-정균환(鄭均桓)총장 체제로 운영, 동교동 핵심인사들을 의도적으로 배제했다. 자연 신·구주류의 갈등이 쌓여갔다.
김대통령은 1년반 이상을 이 구도를 유지했다. 특히 작년 5·24 개각에서는 김중권실장 등의 「전문가 논리」가 수용되면서 정치인 각료들이 대거 배제됐다. 「전문가 논리」는 자민련 지분을 축소하는 명분도 됐다. 김대통령은 신주류에 힘을 실어주면서도 균형론에 입각, 5공의 장세동(張世東)씨, 6공의 박철언(朴哲彦)씨처럼 확고한 실세를 만들지 않고 일정한 우위만을 인정했다.
이런 신주류의 우위도 정치적 위기를 맞으면서 변화를 겪게됐다. 옷사건 파업유도사건 등이 터지면서 김대통령과 「생사」를 같이했던 구주류가 부각됐다. 청와대 한광옥(韓光玉)비서실장 남궁진(南宮鎭)정무수석의 기용이 그 상징적 조치였다. 하지만 구주류의 전면 포진 속에서도 민주당 간판에 서영훈(徐英勳)대표를 기용하고 권노갑(權魯甲)고문을 불출마시키는 데서 여전히 외연의 확대, 견제와 균형의 묘(妙)가 엿보인다./
이영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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