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전 중국 톈진(天津)에서 생사의 기로를 넘으며 한국으로 탈출한 내가 이대로 다시 북한으로 끌려가 죽는구나 하는 생각에 절망했었습니다』1일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납치됐다 18시간여 만에 극적으로 탈출한 조명철(趙明哲·41·전 김일성대 상급교원·사진)대외경제정책연구위원은 24일 기자와 만나 아직도 포승줄 자국이 새빨갛게 남아있는 손목을 내보였다.
지난달 30일부터 중국의 대북경제교류기업 조사를 위해 동료 정모(39)씨와 베이징에 머물던 조씨는 1일 오후 11시께(이하 현지시간) 숙소인 K호텔 커피숍을 찾았다가, 때마침 중국공연을 위해 같은 호텔에 묵고 있던 댄스그룹 H.O.T의 열성팬들이 소란을 피우자 호텔을 나섰다.
조씨는 저녁식사를 했던 K식당 앞에서 재중동포 여성을 만났다. 『동포들끼리 차나 한잔 하지요』 의심없이 따라간 조씨가 도착한 곳은 텅 빈 홀. 곧바로 20대 여자와 함께 나타난 30대 남자 2명이 느닷없이 조씨를 폭행했다.
『깨어보니 두 손은 뒤로 꺾여 나일론끈으로 묶여 있었고 눈과 입에 청테이프가 붙여져 있었습니다』 북한공작원의 짓이 아닌가 하는 공포감이 조씨의 온몸을 엄습했다. 『순간 돈 내놔하는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태어나서 그 순간만큼 기쁜 적이 없었습니다. 공작원이 아니구나, 이젠 살 길이 열렸구나 하는 생각 때문이었죠』
조씨는 흉기를 목에 댄 채 50만달러를 요구하는 이들이 시키는대로 국내에 전화를 걸었다. 『좋은 사업거리가 있는데 6억원을 입금시켜줘. 급해』(조씨는 상대방의 신원을 밝히지 않았다) 범인들은 눈가리개를 벗기고 한모(61·여)씨의 국내 H은행 계좌를 알려줬다. 하지만 돈이 입금되지않자 무차별 폭행이 이어졌다.
조씨는 급한 김에 『아파트 구입비로 마련해 놓은 2억5,000만원을 주겠다』고 제의했고 자신의 계좌가 있는 S은행 지점장에게 절박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었다. 『급해요. 제발 돈을 입금시켜 주세요』 입금이 확인된 것은 오후 4시. 범인들은 조씨의 여권이 필요하다며 결박을 풀었다. 『폭탄이야』 이들은 조씨의 왼쪽가슴에 담뱃갑 크기의 장치를 붙였다.
남녀 범인 각 한명이 조씨를 감시하며 호텔로 향했다. 탈출기회를 엿보던 조씨는 회전문을 지나면서 범인이 등을 보인 순간 주먹을 날려 남자를 쓰러뜨렸다. 놀라 달려든 호텔 보안요원들이 『강도야』하는 조씨의 비명에 함께 범인들을 덮쳤다. 이때가 오후5시. 18시간에 걸친 죽음의 공포에서의 탈출이었다.
『지하1층 호텔보안과 사무실에 전문가들이 와서 폭탄을 해체하는 몇 분동안 온 몸이 땀에 젖었습니다』 하지만 폭탄은 가짜였다.
조씨는 생사를 넘나든 당시를 회상하며 『동포가 동포를 상대로 강도를 하고, 동포가 동포를 중국공안에 넘기는 현실이 슬프다』고 말했다./
안준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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