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헨리의 단편소설들은 대부분 페이소스 짙은 결말을 맞는다. 잘 알려진 「20년 뒤」도 그러하다. 뉴욕의 밤 거리를 경찰관이 순찰하고 있다. 한 식당 앞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남자를 만난다. 남자는 20년 전 형제처럼 지냈던 친구와 헤어지면서 『어떤 처지에 있건, 얼마나 먼 곳에 있건 이 날 이 시간 이 자리에서 만나자』고 약속을 했다고 한다. 얘기를 나누고 경찰관은 다시 순찰을 계속한다. 조금 후 남자는 형사에게 체포된다.■남자는 시카고 경찰의 수배범이었고, 순찰을 돌던 경찰관은 20년 전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나타났던 그의 친구였다. 경찰관은 친구가 수배범임을 알고 차마 제 손으로 체포할 수가 없어 동료형사를 보낸 것이다. 상황의 반전과 의표를 찌르는 결말에 경탄하다가, 문득 한 가닥 우수(憂愁)를 느끼게 된다.
■서울 덕수궁 앞에서 23년만에 이뤄진 사제 간의 「부라보콘 약속」이 화제다. 「2000년 2월 22일 오후 2시에 만나자」는 약속이 지켜진 것이다. 같은 시간 경기 안양의 한 중학교 운동장에서도 사제 간의 재회가 있었다(한국일보 23일자 31면 보도). 10년 전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캐나다에서 날아온 여선생님의 제자 생각이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암을 앓고 있는 여선생님에게 약속은 투병할 수 있는 힘을 주었다고 한다. 세대 차를 뛰어넘어 추억을 공유하고 있음은 이렇게 애틋하고, 지켜진 약속은 아름답다.
■왜 그들은 약속을 하고 한사코 만나려 한 것일까. 「20년 뒤」의 수배범은 『1,000마일 멀리서 왔지만 옛 친구가 나타나기만 하면 그만한 보람이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두 남자 간의 약속은 지켜짐과 동시에 배반당했다. 그러나 약속을 지키고자 한 수배범의 순수한 마음은 긴 여운으로 남는다. 졸업 때가 되어 많은 사람이 「만나자」는 약속을 하고 헤어진다. 헤어질 때는 죽음에 대한 예감으로 슬프고, 재회할 때는 부활의 느낌으로 기쁘다고 한다. 만남의 약속은 죽음과 부활을 이어주는 소중한 끈인 셈이다.
/박래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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