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선거혁명」의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총선 압승으로 의회를 장악한 이란 개혁파는 22일 언론자유 확대, 미국 및 이집트와 관계 개선 등 가히 혁명적인 내용의 개혁 시나리오를 제시했다.개혁파의 결집체인 이슬람 참여전선(IIPF)의 모하마드 레자 하타미 당수는 『차기 의회는 국민의 여망을 조화하는 의회가 될 것』이라면서 언론자유 보장과 위성방송 수신 안테나 금지법 폐지 등을 골자로 한 입법 추진계획을 발표했다. 모하마드 하타미 대통령의 친동생으로 차기 국회의장이 유력한 그는 또 『개혁파는 정보부 및 경제관련 정부기구와 정치인을 감독하기 위해 의회의 권한이 확대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미국과의 대화가 범죄행위는 아니다』면서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위한 분위기 조성작업에 착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그러나 『불신의 장벽을 깨기 위해서는 미국이 먼저 성의를 보여야 한다』면서 경제제재조치 완화 등 「실질적인 행동」을 미국측에 요구할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또 이집트와의 외교관계를 복원하는 등 회교 및 아랍권 국가들과의 적극적인 관계개선에 나선다는 입장도 밝혔다. 이란은 1979년 이슬람 혁명후 이집트 등과 외교관계를 단절했고, 대부분의 중동 국가들은 시아파가 지배하는 이란을 경원시해왔다. 이란의 외교정책 선회는 앞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중동 지역의 판도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개혁파는 이와함께 과거 청산 의지도 천명했다. 하타미는 1998년 야당인사 연쇄살인사건과 지난해 대학생 시위 무력진압사건에 대한 국회차원의 조사를 실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개혁파의 이같은 정책지침은 23일 각국 주재 대사관을 통해 문건으로 공표됐다.
하지만 개혁파의 장밋빛 시나리오가 실현되기 까지는 조금더 지켜봐야 할 것같다. 복잡한 현행 권력구도상 의회는 종교적 원칙과 정신에 위배되는 입법활동을 할 수 없으며 정부도 호헌평의회와 최고평의회, 전문가 집단 등 보수적 권력기구의 견제에서 벗어날 수 없는게 현실이다.
제임스 루빈 미 국무부 대변인은 이와 관련, 『개혁파가 나름의 지위를 구축하고 정책에 영향을 미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면서 즉각적인 화해조치는 제시하길 거부했다. 하지만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이 다음달 예정된 페르시아 신년(新年)을 맞아 이란 국민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방안이 검토되는 등 이란에 대한 「화답 제스처」는 세계적으로 힘을 얻어가는 분위기다.
이동준기자
djlee@hk.co.kr
■[주한 이란대사] "이란총선은 페르시아 문명의 승리"
『이란 민중의 승리임과 동시에 페르시아 문명의 재발견입니다』
모센 탈레이(46) 주한 이란대사는 23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개혁파가 압승한 이번 총선을 한마디로 『민주주의를 지향한 선거혁명』으로 규정했다. 그는 『21년전 유혈 민중혁명으로 팔레비 독재를 타도하고 이슬람국가를 세웠던 이란인들이 이번에도 스스로 미래를 개척했다』면서 『이제 개혁은 미룰 수 없는 대세』라고 말했다.
탈레이 대사는 『서구세력은 지금껏 이슬람혁명을 공산주의와 같은 부류로 평가해왔다』면서 『이번 총선은 이같은 불신을 불식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적대적 관계를 유지해온 미국과 관련, 『하타미 정권은 이미 오래전부터 대화와 긴장완화를 표명해왔다』면서 『미국과의 관계에도 이번 선거처럼 혁명적인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이번 선거를 「페르시아 문명의 승리」라고 평가했다. 탈레이 대사는 『페르시아의 장구한 역사를 가진 이란은 외세가 간섭하기 전에 현명하게 운명을 타개하는 지혜를 갖고 있다』면서 『이란 민중은 특유의 책임감 넘치는 「뚝심」을 발휘했다』고 말했다. 총선에서 나타난 「여성파워」에 대해서도 『법치(法治)를 중시하는 페르시아의 전통이 발현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란 외무부 경제국장을 역임하는 등 경제통인 탈레이 대사는 한국과의 관계와 관련, 『주로 경제분야에 치중된 상호 교류가 이번 선거를 계기로 정치적으로도 확대되길 기대한다』면서 이정빈(李廷彬) 외교통상부 장관의 이란 방문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동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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