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장병욱기자의 막전막후] 화투로 풀어낸 기층민의 애환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장병욱기자의 막전막후] 화투로 풀어낸 기층민의 애환

입력
2000.02.23 00:00
0 0

[장병욱기자의 막전막후] 극단 조형극장의「화투」『평소 않던 욕설이 너무 어색해, 연습하는 두 달 내내 욕만 입에 달고 다녔어요』 전직 작부 음덕역을 맡은 14년 경력의 배우 조정은(34·극단 뿌리 소속)이 말했다. 그러나 덕분에 『개똥에 소똥을 비벼 먹을 놈』이라는 비아냥에서 『여물지도 않은 꽈리불알 갖고 되게 덤벼쌓네』라는 걸쭉한 빈정댐까지, 서울 사람인 그녀의 입담은 전라도 토박이 뺨칠 정도다.

극단 조형극장의 「화투(花投)」는 국민 오락 화투 놀음에 투사된 밑바닥 사람들의 삶을 흥미롭게 그려 낸다. 3,000원을 넘는 법이 없는 재활원 관리실의 가난한 화투판이 배경이다. 인생을 통달한 듯한 덕삼, 그를 사모하는 음덕, 제비 판수, 건달 대복 등 네 사람의 이야기다.화투판을 통해 그들은 하루치의 꿈과 욕망을 축내며 살아 가고 있다. 덕삼이 원장의 신임을 얻어 총무가 되자, 평소 안면을 트고 지내던 판수와 대복이 이 기회에 금고를 털려 한다.

각처의 재활원을 누비고 다닌 작가 김현우(39)씨의 발품 덕에 생생히 살아 있는 대사가 단연 인상적이다. TV나 영화에서는 접할 수 없는 토속 언어의 향연이 벌어진다. 『자다가 시아버지 대갈빡에 오줌 싸는 소릴랑 말고』『밥해먹기가 염라대왕 불알핥기보다 힘들어』『이녁도 벽에 똥칠할만큼 오래살어』 이 연극 유일의 선정적 장면, 음덕과 덕삼이 한밤중 맞닥뜨린 대목이 알싸하다. 죽은 부인을 향해 뭔가 중얼대던 덕삼에게 다가가 안아 주는 음덕. 어울린 둘을 45도 상향 핀 조명이 비춰 올리고, 낮게 깔리는 신시사이저 소리는 사랑의 행위를 부드럽게 감싸준다.

미아리 고개에 위치한 공연장에는 회당 평균 30여명의 대학생 관객들이 공연장을 데운다. 대학생 관객층을 겨냥, 인터넷 선전 작업을 병행한다. 연극동호회 겹씨, MBC 산하의 문화지기, 인터넷 방송 굿모닝, 연사모(연극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등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죽은 육두문자가 인터넷 세대에 먹힐까 고민했다』는 연출자 김지종(30)의 걱정은 하릴없게 돼 버린 셈. 메탈 음악에 도시인의 사이코 심리를 파헤친 99년작 「강남역네거리」 이후 1년만에 이룬 극적 변신이다. 메탈 음악과는 정반대로, 징에서 시작해 사물놀이 소리로 종결한다. 그같은 음악적 수미상관 구조 또한 인상적이다.

이 연극은 4월께면 대학로쪽으로 옮겨 연장 공연에 들어가기로 돼 있다. 27일까지 미아리 고갯마루 활인극장에서. (02)923-1090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