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모 투신사 주식운용팀장 L씨는 회사로부터 한달간 쉴 것을 권고받았다. 수익률이 업계 하위권에 머무는데 따른 문책성이었다.가치투자 위주의 정통파 펀드매니저로 정평나있던 L씨가 「마이너스 수렁」에 빠진 것은 작년 중반부터. 올라갈 만큼 올라간 것으로 분석됐던 정보통신 종목들이 야생마처럼 뜀박질을 멈추지 않았고 내려갈 만큼 내려간 것으로 판단됐던 우량주들은 계속 하락세였다. 설마하던 사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EPS(주당순이익) PER(주가수익률) 등 전통적 투자이론 잣대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뒤늦게나마 첨단기술주로 갈아타려 했지만 시장에 내놓은 거래소의 우량주들은 잘 팔리지도 않았고, 종목 교체에 대한 확신도 서지 않았다. 이같은 상황이 2~3개월 지속되면서 마이너스 수익률을 벗어나기가 점점더 힘들어졌다.
L씨뿐아니라 최근 대부분 펀드매니저들이 겪는 딜레마이다. 투신업계에서 정통 가치투자 인맥으로 분류되는 H투신과 이곳 출신들이 많이 진출한 신생 투신사의 매니저들이 겪는 고민은 특히 심하다.
1998년 업계 최고 수익률을 올렸던 모 투신사 B팀장은 『지금과 같은 장세에선 기관이나 개인이나 다를 게 없다』며 『기업분석이나 전통적인 평가잣대가 소용없는 이같은 투기장에서 1년 경력의 개인이나 10년 경력의 매니저가 뭐가 다르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만큼 동물적 감각, 단기 재료에 좌우되는 투기장이라는 것이다. 오히려 1,2개 종목에 집중투자하는 개인이 기관보다 더 높은 수익률을 올리는 것이 당연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는 『어떤 매니저라도 코스닥에 「몰빵」을 질러 영웅이 되고 싶은 유혹이 없겠냐』며 『그러나 펀드매니저라면 최소한의 투자원칙, 즉 리스크 관리를 할 수 밖에 없다. 하루종일 단말기 앞에 앉아 감각에 의존해 샀다 팔았다 한다면 트레이더(trader)와 다를 게 뭐가 있느냐』고 말했다.
또다른 투신사 Y팀장도 『이론상으론 거래소의 저평가 종목들을 사들여야 하지만 코스닥을 하지 않으면 수익을 낼 수가 없고, 코스닥으로 크게 움직이자니 그림이 안그려진다. 「밤길 조심하라」는 투자자들의 항의, 스스로도 확신이 안서는 장세 등으로 하루하루가 가시밭길』이라고 말했다.
계산상 나올 수 없는 코스닥 가격에 불안해 하면서도 저쪽(코스닥)으로 쫓겨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성장성을 중시하는 D투신과 일부 자산운용사 펀드매니저들의 견해는 다소 상반된다. 모 자산운용사 매니저 S씨는 『아무리 투기장이라 해도 인터넷혁명이라는 세계적 흐름을 인정해야 한다』며 『패러다임이 바뀌면 적정가 평가법도 달라진다. 종목만 연구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다』고 말했다.
D투신 펀드매니저 B씨도 『성장주에 「몰빵」을 지른다고 해서 「마바라(소신없이 시황에 따라 움직이는 투자자)」라고 몰아붙여서는 안된다. 주식의 추한 모습마저도 잘 이용하는 것이 매니저들의 역할』이라며 『펀드매니저들에게 트레이더가 될 것을 요구하는 시장 상황이라면 이를 수용하고 수익률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7월부터 LG정보통신 삼성전기 한통 SKT 등을 집중 편입했던 그는 『결산시점인 3월이면 펀드매니저들도 성장성을 중시하는 80년대 초중반 학번으로 물갈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밸류(value) 라인」이건 「그로스(growth) 라인」이건 2-3월 장세에 대해서는 의견이 일치했다. LG투신 박종규팀장은 『코스닥시장은 기관들이 자금이동을 마무리할 3월까지 상승할 것』이라고 말했고, 대신투신 양유식팀장은 『코스닥이 아예 확실히 올라 버블이 되든지, 정부의 규제가 있든지 등의 계기가 없는한 거래소는 힘들다』고 말했다. 대한투신 백한욱차장은 『코스닥의 상승추세는 3월초까지 이어진다. 문제는 매도 타이밍을 어떤 시그널로 포착하는냐이다』고 분석했고, 삼성생명투신 이창훈팀장은 『코스닥이 가격거품에 대한 우려로 지수급등은 힘들겠지만 중소형주 중심의 강세는 지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병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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