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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영화에서 건져올린 페미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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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영화에서 건져올린 페미니즘

입력
2000.02.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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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성의 유령들」(김소영 지음)근대화는 비근대적 요소를 부정한다. 여기서 힘의 갈등이 생기고, 균열이 나타난다. 「대괴수 용가리」 「우주괴인 왕마귀」 「천년호」 「지옥화」. 이런 이름의 영화들이 유난히 많이 만들어졌던 1960년대. 그 시점은 바로 「근대화」의 기치가 높았던 시기이다. 시대가 바뀌면 사람들은 홍역을 앓는다. 그것은 구시대가 이미 사람들에게 익숙한 양식을 길들여 놓았기 때문이다. 1960년대 영화공간은 판타지 영화를 통해 근대라는 신종 약물을 주입당하는 새로운 「접종」의 증거를 보여주는 치열한 현장이었다.

「판타지 영화」는 기존의 욕망과 새로운 가치가 부딪치는 가장 극렬한 싸움의 현장이다. 일상적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신화나 설화를 기반으로 한 작품, SF, 멜로, 이들 영화들은 인간 내면에서 일어나는 욕망의 근원을 가장 잘 표출하는 방식이었기에 표면적으로 근대화 운동이 일어났던 1960년대는 우리나라 판타지 영화의 출발점이 되는 것이다.

김소영(영상원 교수)씨의 「근대성의 유령들」(씨앗을 뿌리는 사람)은 이런 판타지 영화에 내재된 영화외적 의미 구조를 파헤치고 있다. 1990년대, 요란하게 「탈근대(Post Modern)」주의의 논의와 그보다 더 화려하게 「상품」으로 치장된 시대를 지난 시점에 「근대성」에 관한 논의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 지은이는 우리나라가 아직도 근대와 전근대, 탈근대가 공존하는 「동시대의 비동시성」을 띠고 있다고 지적한다. 바로 그 동시대의 비동시성이 가장 극렬하게 자신을 까발리는 현장이 바로 판타스틱 영화들이다.

1967년 김기덕감독의 「대괴수 용가리」, 권혁민감독의 「우주괴인 왕마귀」 등은 용가리, 마귀 등 전근대적인 공포의 존재들을 등장시켜 과학의 첨단을 「지향」하는 국가의 위기를 보여준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국가적 위기가 바로 남성성의 위기와 그 양태를 같이 하며, 초월적 힘을 가진 괴물을 무찌르는 전사로서의 남성을 통해 안정적 사회구조와 가정구조의 유지를 꾀하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아직도 친구로 보이니』 「여고괴담」이 인기를 끌면서 유행했던 농담이다. 자명한 존재에 대한 호명(呼名)의 교란, 이것은 이 영화는 학교와 교우 관계, 사제관계가 「그러해야 함」의 형식을 떠나 사실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구미호」 「퇴마록」 「여고괴담」 「조용한 가족」등 1990년대 호러물에서 나타나는 불안의 양상 역시 같은 맥락이다.

「모성」을 가진 어머니로서가 아닌 독립적 성적 정체성을 가진 여성의 모습은 멜로 드라마를 통해 표출된다. 「자유부인」 「미워도 다시 한번」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등 멜로 영화의 저변에 흐르는 「모성의 담지자로서의 여성」과 「성적 주체성을 가진 여성」을 보는 미묘한 시각의 변화 등 전반적으로 페미니즘적 시각이 강하다. 자칫 소홀히 넘겨버리기 쉬운 「B급」 판타스틱 영화들을 잘 거두어 페미니즘과 근대성의 맥락을 짚어낸 것은 우리 영화계의 소중한 선물이다. 한국적 영화 담론이 부재한 우리 영화계에서는 더욱 더.

박은주기자

ju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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