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를 다루는 '미다스의 손'원자·분자 단위를 조작하는 나노기술은 조작 도구가 없다면 공상에 그친다. 나노과학의 개념이 1959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리처드 파인만에 의해 처음 제시됐지만 1980년대 원자를 관측·조작할 수 있는 도구가 개발되면서 연구가 본격화했다. 이전까진 원자를 볼 눈과 조작할 손이 없었던 셈이다. 이러한 정밀도구는 나노소자 제작뿐 아니라 유전자조작에도 적용된다.
미 IBM사가 개발한 주사형터널링현미경(STM)은 끝이 뾰족한 침을 물질 표면에 가까이 대고 전압을 걸어 전자가 건너뛰었을 때(터널링) 원자·분자의 변화를 측정하거나 하나씩 들어올릴 수 있다. 주사형탐침현미경(SPM) 원자힘현미경(AFM) 등이 모두 이러한 미세 분석·조작이 가능한 도구들이다.
이를 칩을 제작하는 데 적용하기도 한다. 기존의 방법인 광식각은 감광제(感光濟)를 바른 반도체에 빛을 쪼여 재료를 깎고 쌓는 과정을 반복하는 것인데 SPM 식각, 전자빔 식각 등이 개발되는 것이다. 국내에서도 이 도구들을 만들 수 있지만 아직은 너무 고가이고 속도가 느려 상용화 단계는 아니다.
접근방법이 전혀 다른 「나노 핀셋」도 있다. 지난해 12월 재미과학자 김필립(캘리포니아대)박사와 찰스 리버(하버드대)교수는 사이언스지에 눈으로 보이지 않는 핀셋을 만들었다고 발표했다. 지름 50나노미터(㎚·10억분의1㎙)짜리 탄소나노튜브가 핀셋의 재료였다. 탄소나노튜브는 그 자체가 주목받는 나노 신소재로 탄소원자가 모여 수㎚ 지름의 관을 형성한 것이다. 이들은 탄소나노튜브 2개를 묶고 끝에 전극으로 쓸 금을 붙인 뒤 전류를 흘리자 전압에 따라 2개의 핀셋 팔이 붙거나 떨어지는 것을 알아냈다. 이 성질을 이용해서 지름 500나노미터의 폴리스티렌 구슬을 마음대로 집고 들어올려 보였다. 리버교수는 『집을 짓는데 비유한다면 지금까진 목재들을 이리저리 옮기는 수준이었고 이제는 목재를 세우고 못을 박아넣는 것』이라고 나노 수준을 설명했다.
빛도 핀셋 역할을 한다. 레이저를 렌즈를 통해 한 점으로 모으면 빛의 압력에 의해 원자나 분자를 붙잡을 수 있다. 레이저핀셋은 탄소나노튜브 핀셋보다 조금 큰 편이지만 물리적 접촉이 필요 없어 살아있는 세포를 다룰 수 있다. 박테리아, 세포 속 소기관, DNA 등을 조작할 수 있으며 미국의 불임클리닉에선 정자를 잡아 난자에 수정시키는 데 쓴다. 외국 연구자들은 레이저핀셋으로 세포를 붙잡고, 다른 종류의 레이저를 쪼여 가위처럼 분자막을 잘라 DNA 일부를 잘라내고 치환하는 등 유전자조작에 활용하기도 한다. 나노 도구는 정보통신분야 뿐 아니라 생물학에도 광범위하게 적용될 수 있는 「마이다스의 손」인 셈이다. /김희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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