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월 4일 한국백상예술대상 시상식에서다. TV코미디부문 최우수연기상 수상자 김효진(24)에게 기자는 소감을 물어본 적이 있다. 그녀는 사뭇 진지한 표정을 잡더니 이렇게 말했다. 『백상예술대상은 무척 공정한가 봐요. 저에게 두 번이나 상을 주는 것을 보니까요. 내년에도 공정하게 심사해줄 것을 기대합니다』 역시 재치다. 순발력이다.「쪼매난 예쁜이」. 자신이 우겨서 만든 이 별명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작은 키에 독특하게 생긴 외모는 분명 예쁜 것과는 좀 거리가 있다. 그러나 그녀의 연기는 예쁘다. 탤런트를 능가하는 연기가 자연스럽고 깊이가 배어있기 때문이다.
그녀를 오늘날의 스타로 만든 MBC의 「테마 게임」에서 시련당한 여자, 촌티나는 아줌마, 건방 떠는 애인, 공부 안 하는 여고생 등 무수한 캐릭터를 귀신같이 소화해 냈다. 100여 회를 출연하면서 각기 다른 인물에 천착해 자연스럽게 연출해내는 매번 다른 모습은 시청자들에게 늘 신선함으로 다가왔다. 연기 스펙트럼이 무궁무진하다.
그녀에겐 일상이 아이디어다. 생각을 한 번만 더 하면 일상이 소재가 된다는 것이 지론이다. 트레이드 마크인 『이기 미친나, 뭐 이런기 다 있노. 으잉』 이라는 유행어. 이것도 당초에 대본에 없는 애드립(즉흥대사)으로 그녀의 이모가 하던 말을 기억해 두었다고 사용한 것이라고 한다.
김효진의 인생항로에는 코미디언이 없었다. 그녀는 배우가 되고 싶었다. 서울예술대학 연극과에서 연기를 공부하고 있을 때 잠깐 TV에 출연해 비명 한 번 지른 것이 인생을 바꿔 놓았다. 1995년 1월 대학생들이 주로 출연하는 MBC 「젊음의 다섯마당」 에서 얼굴 한 번 비치지 않고 지른 소리가 김효진 연기 생활의 시작이다. 이후 MBC 「오늘은 좋은 날」 「테마게임」 「여자 대 여자」 등 콩트 코미디와 시트콤 등 연기 폭이 넓은 분야에서 그녀는 더욱 빛났다. 단순한 애드립이나 우스운 몸짓에 의존하는 슬랩스틱 코미디와는 거리가 멀다. 『잘 하는 연기란 깊이 있는 연기인데, 웃길 수도 있어야 하고 울릴 수도 있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단순한 희극배우라기보다는 일종의 성격배우이고 싶어요』
그녀가 표출하는 몸짓이나 배역은 『시청자에게 죄송하지만 저는 아직도 연습중』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때로 매우 과장돼 나타나기도 한다. 또 연기가 필요치 않은 MC를 할 때 힘들어 보인다. 역시 그녀가 노는 물은 연기가 있는 장르다. 『앞으로 드라마 연극 영화 등에 진출해 본격적인 연기를 하고 싶어요. 정통 배우로서요』
그녀의 성격을 알려주는 한 가지. 스타라면 다 있는 매니저가 없다. 『사람들에게 부대끼는 것이 제일 힘들어요. 그리고 돈 갈라먹기가 싫어서요』라며 웃는다. 그녀는 결코 낯선 사람에게 먼저 말을 걸지 못할 정도로 수줍음을 탄다. 그리고 자신이 버는 돈의 대부분을 부모와 남동생에게 쓰는 착한 여자다.
일상에서 만난 화장기 없는 맨 얼굴의 내성적인 여자가 녹화장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웃음보를 자극하는 연기자로 돌변하는 것을 보면 분명 그녀에게는 무한한 스타성이 잠재해 있다. 발전을 기대해도 좋을 듯하다. 『썩지 않으려면 노력해야 한다』는 김효진. 데뷔 5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분명 웃음의 미학을 아는 스타다.
■내가 본 김효진
김효진은 연기로 승부하는 진짜 배우다. 개그맨 지망생들은 잘 들어둘 일이다. 개그맨 심사의 세 가지 기준은 용모, 아이디어 그리고 연기력이다. 세가지를 똑같은 비중으로 평가한다. 용모는 심은하나 김희선처럼 생겨도 점수를 받겠지만 김효진 같이 남들과 달라 보이는 개성있는 얼굴도 높은 점수를 받는다. 김효진은 아이디어의 바탕이 되는 남다른 순발력이 있는 개그우먼이다. 적재적소의 아이디어를 구사한다.
오늘의 김효진을 만든 건 무엇보다 천부의 연기력이다. 잘하는 연기는 자연스러운 연기다. 그녀의 연기는 능청맞으리만큼 자연스럽다. 못하는 연기의 특징이 겉도는 것인데 반해, 잘하는 연기는 배어있는 것이 특징인데 그녀의 연기는 배어있다 못해 우러나올 정도다 /주철환
◇주요 출연 프로그램
1995년 「젊음의 다섯마당」(MBC)
1996년 「휴먼 TV 앗! 나의 실수」(MBC)
「오늘은 좋은날」(MBC)
1997년 「일요일 일요일 밤에」(MBC)
「테마게임」(MBC·3년간 출연)
1998년 「여자 대 여자」(MBC·연기대상 코미디부문 최우수연기상·한국백상예술대상 코미디부문 최우수연기상)
1999년 「행복충전, 유쾌한 일요일」(MBC)
「여기는 코미디 본부」(MBC·출연중·한국백상예술대상 코미디부문 최우수 연기상)
배국남기자 knba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