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살아남은 자의 슬픔」으로 1992년 「오늘의 작가상」을 받으며 당시 이른바 「후일담 소설」과 「베끼기 논쟁」의 한복판에 휘말렸던 박일문(41·사진)씨가 2년 만에 장편 「달은 도둑놈이다」(민음사 발행)를 발표했다.박씨는 자신의 세대를 386, 혹은 475세대라 하지 않고 여전히 5·18세대라 부른다. 대학시절에 유신과 5·18을 맞은 그들은 박씨에 따르면 「낭만주의와 이념이라는 어중간한 회색지대에서 어느 새 세상의 낙오자로 전락해가고」 있다. 박씨의 소설은 이제 40대가 된 작가인 「나」가 과연 『문학을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를 캐묻고 그 해답을 구해나가는 과정이 줄거리다. 작가의 자전적 성격이 짙은 글이다. 출판사를 하는 아내에 얹혀살던 내가 20대 여자 「한란」에 의해 제주도로 초대되고, 거기서 되돌아보는 군대시절과 한란의 인생에 대한 불안, 그리고 폭력적 방식으로 한란의 사랑을 쟁취하려는 40대 영화감독 「장감독」의 이야기가 교차된다.
박씨는 이번 작품에서도 음악과 시 등 여전히 수많은 문화적 코드를 등장시키며 문학행위가 개인과 사회·정치에 대해 가지는 의미와 그에 대한 작가로서의 고민을 보여주려 한다. 『현실에서 세속적 성공을 한 자, 그 성공을 믿으려는 자들은 글을 읽지도 쓰지도 않는다… 스스로 현실의 패배집단이 되길 원하고 패배를 자기화하여 패배를 가져온 환경을 개선하거나 비판하려는 운명의 사도들… 그들이 언어를 무기로 삼는 글쓰는 자들 아니겠는가』 박씨는 주인공의 입을 빌어 『나도 끝까지 살아남고 싶었어. 그러나 깨끗하게 살아남는다는 것은 이제 불가능한 이야기야』라고 자조적으로 말하고 있다.
하종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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