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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따라 떠돌던 방랑시인의 날카로운 풍자가 놀랍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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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따라 떠돌던 방랑시인의 날카로운 풍자가 놀랍구려-

입력
2000.02.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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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삿갓(金笠). 19세기 조선 팔도 방방곡곡을 삿갓을 쓰고 돌아다니며 당시 양반귀족의 부패상, 죄악상을 풍자적인 시로 폭로했던 방랑시인. 그의 생애와 그가 남긴 시를 한 자리에 모은 「정본(正本) 김삿갓 풍자시 전집」이 실천문학사에서 발간됐다.이 책은 당초 1956년 북한 평양 국립출판사에서 「풍자시인 김삿갓」이란 제목으로 출판됐던 것. 경성제대 조선어과 출신으로 일제하 전국을 답사해 김삿갓의 시를 수집, 1939년에 「김립 시집」을 발간했던 이응수(李應洙·1909-1964)가 해방 이후 북한에서 문학사 연구를 하면서 자신의 김삿갓 연구 결정판으로 내놓았던 책이다. 「김립 시집」은 해방 전 최고의 베스트셀러였고, 1956년의 북한판도 2만부나 발행됐을 정도였다. 김삿갓이 우리 민중들에게 얼마나 깊이 각인된 인물인가 하는 것이 실증된 셈이다.

「吉州吉州不吉州(길주길주부길주) 許可許可不許可(허가허가불허가) 明川明川人不明(명천명천인불명) 漁佃漁佃食無魚(어전어전식무어)」

「길주 명천」이란 김삿갓의 시의 전문이다. 「좋은 고을 길주라 하나 조금도 좋은 고을이 아니어서/허가가 많이 사나 과객을 허하는 집 하나도 없다/밝은 강 명천이란 지방에 사람은 전혀 밝지 못해서/고기밭이란 어촌에 고기란 꼬리도 볼 수 없다」. 함경북도의 길주, 명천 지방에 허가(許哥)가 많이 사는데 이 지방에는 옛날 과객을 재우지 않는 악습이 있었다. 김삿갓은 그 악습을 지방 이름과 지방 특산물인 고기(漁佃·어전은 동리 명칭이자 고기밭이라는 의미)에 결부시켜, 절묘한 음률의 풍자시를 만든 것이다.

김삿갓의 본명은 김병연(金炳淵), 호는 난고(蘭皐)이다. 1807년 당시 제일의 명문세가이던 장동(壯洞) 김씨 김익순(金益淳)의 손자로 태어났다. 그러나 여섯살 되던 때 홍경래(洪景來)의 난이 일어나 선천(宣川) 방어사로 있던 김익순이 홍경래에게 항복, 난 후 김익순은 참형을 당하고 일가는 페족된다. 김병연은 집안의 종에 의해서 키워져 일찍 천재적 재능을 보였으나 백일장에서 장원급제하고도 신분이 밝혀져 취소된다. 그는 이후 22세 때 집을 나와 1864년 전라도 동복(洞福)의 한 농가에서 객사할 때까지 40여년간 방랑생활을 한다. 이러한 개인적 곡절에서 비롯된 지배층 및 당시의 봉건적 사회구조에 대한 반항, 인도주의적 평민사상에 기초한 그의 시는 당시 조선 전국의 민중들에게 엄청난 사랑을 받았고, 과거에서도 필수 참고서처럼 읽혔다고 한다.

1982년 강원 영월군에서 그의 묘와 집터가 발견돼 지금은 이 지역에 묘비와 시비, 유적비가 서 있다. KBS라디오의 「방랑시인 김삿갓」은 한국의 최장수 라디오 프로그램이다. 소설가 이문열씨는 김삿갓의 삶과 시에 자신의 문학관을 반영한 장편소설 「시인」을 썼고 이 작품은 세계 각국어로 번역됐다.

하종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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