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대 총선 공천자 발표가 시작됐다. 여전한 하향식 밀실공천에 정당마다 내부갈등이 심하고, 시민단체는 공천무효 소송까지 낼 태세다. 공천 탈락자나 당원도 아닌 시민단체의 소송에 법원이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하다. 공천 민주화가 풀뿌리 민주주의 실현에 중차대한 만큼 법원이 무효판결로 세상을 놀라게 하는 사태가 은근히 기대되기도 한다.■그런 사태가 1993년 독일 함부르크주(州)에서 있었다. 91년 주의회 선거때 야당 기민당(CDU)의 후보공천이 비민주적이었다는 젊은 당원들의 제소를 헌법재판소가 받아들여 전체 선거를 무효로 선언, 재선거를 하도록 결정한 것이다. 선거에서 이겨 2년간 집권한 사민당(SPD)은 애꿎게 재선거 부담을 졌지만, 헌법재판소는 정당의 내부 민주주의를 대의정치의 기본전제로 못박은 헌법이념을 무시한 후보공천은 용인할 수 없다고 밝혔다.
■독일 의회선거는 지역구투표와 정당투표를 병행하지만 사실상 비례대표제다. 의원정수가 60명이면 정당득표율에 따라 60명 의석을 나누고, 각 당 배분의석에는 정수의 절반 30명만 뽑는 지역구 당선자를 포함시킨다. 각 당은 실제 당락을 가르는 비례대표 리스트에 당원들이 선출한 지역구후보를 당내 서열대로 먼저 배치하고 나머지 각계각층 대표를 정수만큼 채운다. 함부르크 기민당 지도부는 리스트 작성을 독단해 문제가 됐고, 헌법재판소는 권력정치의 틀을 깨는 통렬한 심판을 한 것이다.
■우리 헌법과 정당법도 정당 내부 민주주의 원칙과 민주적 후보공천 의무를 분명하게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도 모든 정치세력은 헌법이념을 짓밟고 있고, 국민은 또 이를 용인해 왔다. 유권자와 국민대표의 핵심 연결고리인 후보공천은 대의민주주의의 출발선이다. 이 공천과정을 정당보스들의 전횡과 밀실에서 끌어내 「유권자지배」원칙과 공개성을 확립하지 않고는 어떤 정치개혁, 선거혁명도 헛된 구호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강병태 논설위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