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근(鄭亨根) 맞습니까』 『예』『직업은 뭡니까』 『현역 국회의원입니다』
17일 오후 3시45분 서울지검 1144호 특별조사실. 「언론대책문건」사건 주임검사인 서울지검 형사3부 오세헌(吳世憲)부부장검사의 인적사항 확인에 정형근의원은 짤막하게 답변했다. 그러나 정의원이 입을 연 것은 여기까지였다.
『이강래(李康來)전 청와대 정무수석을 언론장악 문건 작성자로 지목한 이유는 뭡니까』 『…』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89년 북한공작금 1만달러를 받고 노태우(盧泰愚) 전대통령에게 싹싹 빌었다고 발언했는데 근거가 있습니까』 『…』
오검사와 「빨치산식 수법」발언사건의 주임검사인 공안1부 임성덕(林成德)부부장검사 등 서울지검 베테랑 검사들이 차례로 소나기같은 질문을 퍼부었으나 정의원은 시종 눈을 내리깐 채 입을 굳게 닫았다.
정의원에게 번번히 「수모」를 당해온 검찰은 어떤 식으로든 이번에는 「끝장」을 내겠다는 각오로 이날 무려 1,000여개 신문항목을 준비했으나 정의원의 철저한 「무대응」전략에 허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답답해진 검사들이 『검찰 선배로서 진실을 밝히는데 협조해달라』고 설득도 하고, 『도대체 이럴려면 무엇하러 나왔느냐』고 다그치기도 했으나 정의원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아무런 「소득」도 없이 수사검사가 「독백」만 하는 이같은 상황은 밤늦게까지 계속 이어졌다. 검찰은 밤샘 수사를 하지 않는다는 원칙에 따라 자정께 조사를 끝내고 정의원을 귀가시키려 했으나 정의원은 『끝까지 조사받겠다』고 완강히 버텼다. 결국 정의원은 특조실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이날 정의원은 처음부터 검찰의 「허」를 찔렀다. 정의원은 조사 시작전 돌연 『변호사가 입회한 상태에서 조사를 받게 해달라』고 요구해 검찰과 실랑이를 벌였고 결국 검찰은 『한시간마다 변호사가 들어와 진술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타협했다.이 때문에 첫신문도 정의원이 조사실에 들어선 지 한시간여가 지난 오후 3시45분이 돼서야 시작됐다.
이에 앞서 이날 오후2시께 정의원은 한나라당 이신범(李信範) 김영선(金映宣)의원 등 동료의원 4명과 변호사 등 20여명과 함께 버스편으로 서울지검 청사에 도착했다. 정의원은 청사 로비 「포토라인」에서의 사진촬영을 거부,사진기자들과 몸싸움을 벌이다 항의를 받자 『난 범법자가 아니다』라고 목청을 높였다. 정의원은 곧장 기자실로 가 30여분간 자신의 입장 등을 밝힌 뒤 간부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11층 특별조사실로 향했다.
검찰은 이날 오전 정의원의 출두소식이 전해지자 한때 당황했으나 이후 임휘윤(任彙潤)서울지검장과 정상명(鄭相明)1차장검사 직무대리, 박 만(朴 滿)공안1부장이 모여 1시간동안 긴급 대책회의를 갖고 정의원 조사방법및 절차 등을 논의했다. 검찰은 또 오후 늦게 보도자료를 배포,『11일 밤 긴급체포과정에서 정의원측을 폭행하거나 기물을 부순 적이 없고 더구나 체포특공대같은 것은 있지도 않았다』며 정의원측과 팽팽한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박정철기자
parkjc@hk.co.kr
손석민기자
hermes@hk.co.kr
한나라당 정형근(鄭亨根)의원은 17일 오후 서울지검으로 출두한뒤 검찰조사에 앞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다음은 일문일답 요지.
_전격적으로 출두한 이유는.
『출두가 아니라 출석이다. 나는 범법자가 아니다. 지역구인 부산에서 보고대회를 연뒤 23일께 출석하려고 했으나 지역감정을 부추긴다는 오해가 있고 검찰이 이사건을 정치적으로 악용하려는 의도를 보고 출석을 결심했다. 당 총재가 18일 관훈토론회에 참가한다는 것도 고려했다』
_어느 정도 머무를 것인가.
『한번에 충분히 조사할 수 있도록 시간을 주겠다. 밤샘조사도 감수하겠다. 그러나 추가출석은 하지않을 것이다. 선거준비도 해야한다』
_묵비권을 행사한다고 했는데.
『묻는 것과 묵비는 별개다. 상황에 따라 대처하겠다』
_조사대상 사건에 대한 입장을 밝혀달라.
『언론문건사건은 국회의원으로서 면책특권이 인정되는 사건이다. 이근안 사건은 나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 서경원 고소사건과 빨치산 발언 사건은 정치적 현안일 뿐이다』
_법관의 영장발부를 존중한다면서도 당사에서 저항했는데.
『검찰이 집안 기물을 부수며 난입하는데 격분했다. 검사가 그런 상황에서 영장집행을 해서는 안된다. 나는 세상을 피하며 살아오지 않았다』
_임휘윤 서울지검장과는 통화 했나.
『임 검사장이 처한 입장을 이해하기에 통화나 항의는 하지않았다. 친구와 대치하는 상황이지만 원망하지는 않는다』손석민기자
herm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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