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위버가 일을 저질렀군』지난 1일 저녁 뉴햄프셔 예비선거에서 존 맥케인 상원의원이 조지 W 부시 텍사스 주지사를 19%포인트차로 대파하자 프레스룸에서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이곳에 모인 선거분석가들은 아이오와 코커스를 포기한 채 뉴햄프셔에만 주력한 맥케인의 유세총감독 존 위버의 전략이 적중했음을 예외없이 인정했다.
모든 공화당 대선주자들이 중부 아이오와의 대평원을 누비고 있을 때 맥케인은 홀로 북동부 뉴햄프셔를 누비고 다녔다. 실상 맥케인진영도 초반 아이오와를 포기하는 「사석(捨石)작전」을 회의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위버는 4년전의 실패를 통해 귀중한 교훈을 체득했다.
1996년 당시 공화당 대선후보지명전에 나선 필 그램 상원의원의 유세참모를 맡았던 그는 자금과 조직이 약한 후보에게는 발로 뛰는 현장 정치가 무엇보다도 소중하다는 것을. 정치적 의미가 퇴색된 아이오와를 건너 뛰어 뉴햄프셔에 매달린 그의 베팅은 멋들어지게 성공했다.
위버가 맥케인에게 제시한 두가지 전략은 「공회당집회」와 「기자와 터놓고 말하기투어」. 위버는 「정직하기는 하나 나라를 맡기기에는 성격이 너무 거칠고 급하다」는 맥케인에 대한 세평을 불식시키는 것이 급선무라고 판단했다. 무려 144회에 달하는 「공회당집회」는 이래서 강행됐다.
위버는 또한 언론을 우군으로 만들기위해서는 인간적으로 친밀해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고 맥케인이 탄 1호 버스에는 측근참모 몇명을 제외하고는 기자들을 태웠다. 그의 의도대로 1달여내내 뉴햄프셔를 일주하며 온갖 문제를 놓고 버스속 토론을 가진 기자들은 맥케인과 「동지적 관계」를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맥케인의 허물없음은 특히 잦은 실수로인해 언론과의 접촉을 회피한 부시 주지사와 큰 대비가 됐다.
또 최근 위싱턴 정가에 나도는 맥케인과 개혁당의 제휴 가능성도 그의 머릿속에서 그려진 밑그림이 아닌가는 관측이다.
부시 진영의 경계대상 1호로 떠오른 위버의 고향은 아이러니컬하게도 텍사스. 텍사스 A&M대학에서 언론을 전공한 위버는 1984년에 상원의원에 출마한 대학지도교수 필 그램의 참모를 맡으며 정치판에 뛰어들었다. 그후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으며 지금까지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을 포함해 모두 11명의 선거 참모로 활약했다. 이번에 부시진영에서도 손을 내밀었으나 「돈보다는 인간」이 중요하다며 맥케인 진영을 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불혹의 나이에 「절반의 성공」을 거둔 위버가 맥케인의 백악관행이라는 「최종성공」을 이뤄낼 지는 아직 미지수다. 그러나 부시 진영은 위버의 다음 전략을 주시하며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워싱턴=윤승용특파원
syyoo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