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시경제적으로 최악의 모습이 연출되고 있다. 바로 「무역적자속의 환율하락」이다. 무역수지(넓게는 경상수지)가 적자가 나면 환율이 오르고, 환율이 오르면 다시 무역수지가 개선되는, 무역과 환율의 「자동조절기능」이 전혀 작동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원인은 자본수지(외국인직·간접투자자금)에서 워낙 큰 흑자가 나고 있기 때문. 결과적으로 무역적자속의 환율하락은 적자를 더 부추기고 대외균형기반을 급속히 파괴, 중장기적으로 환란(換亂)위험성을 고조시키고 있다.
■ 어두운 수출입환경
수입은 날고, 수출은 기는 형국이다. 수입의 최대 악재는 유가상승. 산유국 감산이 9월까지 연장될 것으로 보여 배럴당 25달러(두바이유 기준)에 진입한 국제유가는 좀처럼 떨어지기 어려울 전망이다. 공업용 국제원자재가격도 비수기인 겨울철을 넘기면서 수요가 급증, 수입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여기에 소비재·자본재 수입까지 가세, 이달 1-15일중 수입은 42.1%나 늘어났고 11-15일중엔 무려 수입증가율이 84.2%에 달했다.
최대수입품목인 유가는 상승하는데 최대수출품목인 반도체가격은 급락세다. 15일 64메가D램 가격은 개당 5.8달러까지 떨어져, 수출업체 채산성 마지노선까지 위협하고 있다. 폭발적 수입증가와는 대조적으로 이달 1-15일 수출은 3.3% 늘어나는데 그쳤다.
■ 거꾸로가는 환율
연초 달러당 103-104엔을 오갔던 엔·달러환율은 16일 109엔대로 높아졌다. 외환당국 관계자는 『미국 금리인상 가능성이 계속 남아있어 달러강세는 지속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반면 원화환율은 절상압력이 계속되고 있다. 무역수지에서는 달러가 빠져나가지만 올해들어 증권투자자금만 25억달러가량 순유입됐기 때문이다. 엔화만큼 절하되어도 모자랄 판에 원화는 절상되고 있으니 제대로 수출이 될 리 없고 무역수지는 계속 나빠지고 있는 것이다.
■ 환율·국제수지중심의 경제운용
현 추세대로 라면 무역수지의 「적자기조진입」은 시간문제다. 경상수지도 마찬가지다.
자본수지에서 아무리 흑자가 생겨도 이는 언제라도 떠날 수 있고, 오히려 떠날 기회만 노리는 「투기성 달러」다. 반면 무역·경상수지로 벌어들인 달러는 그 자체가 국부(國富)의 증가이고 외환보유액의 원천도 바로 여기다. 무역·경상수지 흑자기조가 깨지면 투기성 자본은 이탈할 수 있고, 이는 결국 환란(換亂)으로 연결된다. 성장 실업 물가도 문제지만, 대외적자는 온 국민에게 무차별 피해를 준다는 점에서 가장 신경을 써야할 부분이란 지적이다.
LG경제연구원 오문석(吳文碩)박사는 『개방경제하에서 수출이 부진해 무역흑자기반이 깨지면 국내경기침체는 물론 심각한 외환위협이 올 수 있다』며 『거시경제운용을 수출과 환율안정 중심으로 시급히 전환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성철기자
s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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