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피린은 매년 전세계에서 600억 알 이상이 소비되는 「진통제의 대명사」다. 페니실린, 스테로이드와 함께 인류가 발견한 3대 명약으로 꼽히기도 한다. 아스피린은 1899년 독일 바이엘사가 처음 선보였다. 당시에는 발열과 류머티즘에만 효과가 있는 것으로 소개됐지만, 최근 뇌졸중, 심장병 등을 예방한다는 연구결과가 잇따르고 있다. 아스피린은 「만병통치약」일까.심장마비를 예방해 준다
아스피린은 원래 해열진통제로 개발됐지만, 혈액을 굳지 않게 하는 항(抗)응고 작용 때문에 심장병 예방에 더 많이 쓰이고 있다. 급성 심근경색증이나 협심증과 같은 질환은 심장에 혈액을 공급하는 관상동맥이라는 혈관을 갑자기 막히게 만든다. 피가 굳어져 생기는 혈전(血栓·피떡)이 혈관에 쌓이기 때문이다. 혈전에 의해 혈류장애가 생기고, 심장근육에 혈액 공급이 중단되면 일부 심장근육에 괴사가 일어나고 급기야 심장마비를 일으키게 된다.
혈전을 형성하는 가장 중요한 물질은 피 속에 들어있는 혈소판. 혈소판은 몸에 상처가 나든지 혈관이 손상됐을 때 상처에 혈전을 만들어 지혈을 시키는 기능을 한다. 마찬가지로 혈관 내벽도 당뇨, 고혈압 등으로 만성적인 손상을 입으면 혈전이 생겨 동맥경화증을 일으킨다. 따라서 동맥경화증의 위험이 높은 사람은 혈전이 쌓이지 않게 하는 것이 심장마비를 예방하는 길이기도 하다.
아스피린은 현재 혈전 예방 목적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약이다. 급성 심근경색이 발생한 환자의 경우 어린이에 사용할 정도의 적은 양만 먹어도 사망률을 20% 정도 감소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위장 장애를 일으킬 수 있고, 심하면 위장관 출혈의 원인이 돼 위험한 상황이 생기기도 한다. 동맥경화증이 발생할 위험이 없는 사람이 복용할 경우 심장병 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확실한 증거도 없다. 따라서 먼저 동맥경화증 등의 위험요인이 있는지, 위장질환은 없는지 등을 자세히 살펴 의사의 지시와 처방에 따르는 게 안전하다.
뇌졸중의 2차 예방효과가 뛰어나다
뇌졸중을 한 번 이상 경험한 환자에게 아스피린을 장기투여하면 뇌졸중의 재발을 20∼25% 줄일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급성기 뇌졸중에서도 사망률을 줄이고 조기 재발을 억제하는 효과가 입증됐다.
그러나 아스피린의 1차 예방효과(아직 발병하지 않은 사람의 혈관질환을 예방하는 효과)에 대해선 아직 부정적이다. 1988년 영국에서 남성 의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연구결과 아스피린이 뇌졸중이나 심근경색의 발병률을 줄이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에 대한 연구결과는 아직 보고된 게 없으나, 현재 미국에서 45세 이상 직업여성 4만명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이 진행 중이다.
이렇게 볼 때 뇌졸중의 치료 및 예방과 관련한 아스피린의 사용은 아직 제한적인 만큼 무분별하고 자의적으로 사용해선 안된다. 미국심장학회는 아스피린을 혈관질환의 1차 예방약으로 쓸 때 「혈관질환의 위험이 높은 남성으로서 아스피린 사용의 금기증에 해당되지 않는 경우에 한정해야 한다」고 권하고 있다.
여성은 특별한 지침이 없어 남성에 준해 투여하는 게 통상적이다. 그러나 뇌졸중의 1차 예방과 관련, 더 중요한 것은 심혈관계질환의 위험인자를 조절하는 것이다. 연구결과 콜레스테롤을 10% 줄이면 혈관질환의 위험이 20∼30% 감소하며, 이완기 혈압이 5mmHg정도 떨어지면 뇌졸중의 위험은 42% 감소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아스피린의 1차 예방효과인 21%(혈관진환), 13%(뇌졸중)와 비슷하거나 웃도는 수치로, 아스피린의 투여가 결코 위험인자 조절을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당뇨병성 합병증의 발생을 줄이거나 늦춰준다
당뇨병을 열심히 관리해야 하는 이유는 혈당 조절이 잘못됐을 때 찾아오는 합병증이 너무 큰 고통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당뇨병성 합병증은 혈관의 합병증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가 생긴 혈관에 혈소판이 모여들어 혈전이 생기면 혈관은 더욱 좁아지고 완전히 막히기도 한다. 당뇨병 환자는 정상인에 비해 혈소판 기능이 항진(亢進)돼 있기 때문에 혈전이 생길 위험이 더욱 높다.
아스피린은 혈소판이 응집해 혈전이 생기는 것을 막아준다. 따라서 당뇨병성 합병증이 생길 가능성이 많거나 이미 진행 중인 환자가 소량의 아스피린을 복용하면 합병증의 발생을 줄이거나 진행 속도를 늦출 수 있다.
임신중독증과 불임치료에도 효과
임신중독증 여성은 혈관이 과도하게 수축돼 혈압이 증가한다. 이 때 아스피린을 사용하면 혈관이 확장되고 혈류가 개선돼 증상이 호전될 수 있다. 그러나 증상이 심한 경우엔 효과가 별로 없다. 습관성 유산도 자궁 속의 혈관에 피가 응고돼 생기는 경우가 많아 아스피린을 사용하면 혈류개선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이 때도 모든 환자에게 치료효과가 있는 것은 아니다.
최근엔 불임치료에도 아스피린이 사용된다. 나이가 많거나 난소 기능이 약해 배란되는 난자의 수가 적은 여성에게 아스피린을 투여하면 난자의 수와 질이 향상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자궁내막이 손상돼 착상이 잘 안되는 여성에게 아스피린을 사용한 결과 임신이 잘 된다는 보고가 있다.
그러나 임신 중 아스피린을 사용할 때는 태아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
임신부가 정상인의 용량을 그대로 복용하면 태아의 심장에 기형을 유발하거나 출혈이 증가하는 부작용을 나타낼 수 있다. 임신 중 사용하는 아스피린의 용량은 일반 용량의 20분의 1 정도가 바람직하다.
을지병원 신경과 배희준·내과 최재웅·산부인과 박원일교수
■아스피린 작용과 복용시 주의사항
아스피린의 항응고효과가 알려진 것은 불과 20여년 전. 1979년 영국의 존 베인 경이 아스피린의 약리작용을 규명했고(이 공로로 노벨의학상 수상), 미국 식품의약청(FDA)은 1980년에야 아스피린을 뇌졸중 예방약으로 공인했다.
아스피린은 기본적으로 혈소판 내에 있는 「사이클로옥시제나제」라는 효소의 기능을 정지시켜 혈액이 잘 응고되지 않도록 한다. 또 염증이 진행중인 조직에 작용할 경우 중요한 염증 매개물질의 하나인 프로스타글란딘의 생산을 막아 소염 효과를 나타낸다.
뇌의 시상하부에선 프로스타글란딘 및 통증에 관련된 물질의 생산을 억제, 진통효과를 나타낸다. 아스피린은 이 처럼 인체 조직의 어떤 세포에 작용하느냐에 따라 매우 다양한 효과를 보인다.
아스피린을 지나치게 많이 투여하면 이명, 어지럼증, 청력감소 등의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소화불량이나 위장출혈도 흔한 편이다. 항응고 작용이 있는 만큼 출혈성 질환이 있는 사람이나 임신부는 복용을 피해야 한다.
드물지만 과민반응으로 두드러기나 기관지 경련이 나타날 수 있어 천식 환자는 주의가 필요하다. 장기 복용하면 신장질환을 일으킬 수 있다는 보고도 있으므로 간질환이나 신장질환이 있는 사람은 전문의의 진단을 받아 사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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