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두라흐만 와히드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14일 동티모르 유혈 사태 진상 조사와 관련, 위란토 정치안보 조정담당 장관의 직무를 전격 정지시켰다.16일간의 해외 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와히드 대통령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동티모르 유혈 사태에 관한 검찰 특별 수사팀의 조사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위란토 장관의 직무를 정지시키기로 했다』고 밝혔다. 와히드 대통령은 수르자디 수디르자 내무 장관을 정치안보조정 담당 장관 직무 대행으로 임명했다.
이에대해 위란토 장관은 『그(대통령)의 권한』이라며 일단 받아들이겠다는 뜻을 밝혔다.
와히드 대통령은 앞서 13일 오전까지만 해도 『동티모르 폭력사태 진상조사가 끝날때까지 위란토 장관이 직무를 수행토록 하겠다』고 밝혔다가 하루만에 입장을 전환한 것이다. 이와 관련, 현지 언론들과 전문가들은 노련한 와히드가 국내 정치의 혼란을 막고, 국외의 따가운 시선을 피하기 위해 절충한 다목적용 「묘수」를 던진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즉 이번 조치는 반(反) 위란토 세력에게는 사실상의 해임이라는 의미를, 위란토 측에는 『쫓겨나지 않았다』는 명분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와히드 대통령은 먼저 점증하는 과거 청산의 목소리와 기득권 세력인 군부의 입김, 자신의 정치적 위상 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군 고위 장성들이 11일 반(反) 위란토 성명을 발표했지만 아직도 군부내 위란토 영향력은 강하다.
게다가 위란토 유임을 발표하자 곧바로 언론에서는 「위란토의 승리= 와히드의 정치적 타격」라는 해석이 나오는 등 자신의 정치적 위상이 심각한 손상을 입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사실 와히드는 소수당 출신의 약체 정권이지만, 「문민정권」의 도덕성을 내세워 수하르토 전 대통령과 위란토를 중심으로한 기득권 세력 제거 작업을 전개해왔다.
해외의 시선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으로 관측된다. 와히드의 해외 순방은 경제회복을 위한 외자유치가 목적이었다. 그러나 쿠데타 가능성 등 국내 정치의 불안으로 해외 투자가들의 발길을 잡기가 어려웠던 게 사실이다.
따라서 위란토의 제거를 통한 군부 장악과 정치 안정이 필수적이었고, 이번 동티모르 유혈사태 조사는 이를 실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셈이다. 위란토의 직무정지는 유엔인권위원회 등 국제사회에 인도네시아 정부의 인권수호 의지를 보여주는 효과도 거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위란토가 그동안 『혐의가 없다』면서 완강히 자신의 사임을 거부해온 만큼 순순히 와히드의 의도대로 움직일 것으로 속단하기는 아직 이르다.
권혁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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