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유전자 특허전쟁이 생명공학에서도 가장 뜨거운 이슈로 등장했다. 미국 셀레라 지노믹스와 인사이트제약, 두 유전정보회사는 수천건의 인간유전자 특허를 출원 중이다. 인사이트사는 이미 356건의 특허를 확보, 가장 많이 보유한 미국정부(388건)에 도전했다. 컴퓨터 혁신으로 게놈분석에 획기적 진전을 이룬 셀레라사는 중요한 유전자를 금고 속에 꽁꽁 숨겨두고 있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미 특허청에 계류 중인 인간유전자 특허는 100만건 이상으로 추정된다.■돈 좇는 유전자 선점경쟁
인간유전자 특허가 어떻게 돈이 될까? 암진단용 DNA칩이 상용화했을 때를 예로 들어보자. 칩에 진단용 유전자가 1만개쯤 심어지고, 각각 10원씩 로열티가 걸려있다면, 칩 1개에 지불되는 로열티가 10만원. 1년에 10만명이 이 칩을 사용한다면 100억원이다. 유전자를 이용한 치료제·치료법에 대한 로열티는 물론 따로다. 의료 뿐 아니라 농업·환경·전자 등 유전자연구의 적용범위는 광범위하다.
인간유전자는 약 10만개로 추측되는데 출원된 특허가 100만건 이상인 것은 기업들이 유전자의 부분서열들을 제각각 특허내고 있기 때문이다. 1998년 11월 인사이트사는 인간 카이네즈효소를 생산하는 DNA 전체서열과 44개의 유전자단편(EST)을 따로따로 특허신청, 국제적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EST에 특허가 인정되면 나중에 전체 유전자를 밝혀 이용하는 경우에 이중으로 특허료를 물어야 하기 때문이다. 급기야 미국 유럽 일본 3대 특허청은 지난해 EST에 대한 특허심사기준을 협의, 특정 질병을 진단할 수 있다는 유용성이 명확할 때에만 특허를 내도록 결정했다.
■우리나라 중요 특허가 없다
우리같은 후발주자는 일단 숨을 돌리게 됐지만 게놈연구의 경쟁력이 한참 뒤떨어져 있는 게 문제다. 우리나라는 인간유전자 서열을 특허로 등록한 사례가 없고, 특히 생명공학에서 가장 중요한 물질특허(유전자특허도 여기에 해당)에 약하다. 유전공학지가 1990~94년 6개국의 유전공학 특허현황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특허는 총 3,411건 중 1%도 안 되는 21건(도표1 참조). 특허청 유전공학과 이성우과장은 『국제적으로 인정받아 자주 인용되는 특허는 전무한 실정』이라고 지적한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이 1975-1998년 한국에 출원된 생명공학분야(국제분류 C12N) 특허현황을 분석, 지난달 펴낸 정책연구 보고서를 보면 내국인 특허는 1,544건(36%), 외국인 특허가 2,715건(64%)으로 일단 수적으로 열세다(도표2 참조). 내국인이 외국에 앞서 신물질을 개발해 특허를 출원한 사례는 한 건도 없다. 질병치료·예방 관련 특허는 대부분 미 식품의약국(FDA) 공인 직후 나왔다. 안두현·정교민연구원은 『우리나라 연구가 외국에서 효과가 입증된 물질의 모방, 개량에 치중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한다. 개량 특허는 외국에서 특허를 얻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유전자 서열보다 기능이 관건
결국 우리나라가 올부터 프론티어사업으로 본격 추진하는 게놈연구가 걸어야 할 길이 자명해진다. 우리나라에 많은 위암·간암에 집중하는 것은 물론, 그 중에서도 진단·치료에 핵심적인 유전자를 밝혀내야 하는 것이다. 한 연구자는 『일부 핵심기술을 틀어쥐고 특허를 맞교환하는 것이 우리가 취해야 할 전략』이라며 『여기서 실패하면 우리나라 질병치료까지 모두 외국에 비싸게 맡겨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선 밝혀진 유전자 서열을 어떻게 분석, 유용성을 밝혀낼 것인가가 중요하다. 새로 서열을 밝혀낼 것은 남아있지 않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사이트사는 미국정부가 공개한 유전자 자료를 적절히 분석, 제약회사 등에 팔고 있다. 게놈연구는 슈퍼컴퓨터를 이용한 통계처리와 정보생산, 즉 「생물정보학」으로 변모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에선 공개자료를 이용하는 연구진조차 드물고 대용량의 컴퓨터나 유전정보를 가공하는 노하우가 크게 부족하다.
특허에 대한 제도보완도 필요하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의 위 보고서를 보면 국내 특허는 외국에 비해 개인출원이 많다(도표3 참조). 과학기술원, 포항공대등을 제외하곤 대학이 교수 특허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술이전을 활발하게 할 기술이전촉진법도 하루빨리 시행돼야 한다.
1984년 미 생명공학회사인 GI사는 연간 10억달러 시장을 갖는 조혈단백질(EPO)의 물질특허를 얻었다가 암젠사와의 법적 소송에 휘말렸었다. GI사가 단순히 물질만 추출해 특허를 얻은 반면 암젠사는 DNA서열을 함께 규명, 수년간의 법정싸움 끝에 승리했다. 암젠은 현재 미국 생물산업계의 선두에 있고 GI사는 후발업체로 전락했다. 운명을 가른 유전자연구가 한 기업의 일이라면 오히려 다행이다. 게놈연구는 국가의 운명을 좌우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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