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골을 지킨 힘을 모아 강경(江景)의 문화유산을 사수하겠습니다』지난달 전국 규모의 단체인 「내셔널 트러스트((National Trust) 운동」의 창립을 계기로 많은 사람들이 이 말을 처음 접했지만, 이미 국내에서 이 운동에 성공한 단체가 있다. 「오정골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약칭 오시모)이 그 주인공이다.
오정골은 50년대에 조성된 대전 대덕구 오정동 미국인 선교사촌. 1만여평의 터에 우리나라 전통양식과 서양식이 조화를 이룬 아름다운 근대건축물 7동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또 50여종의 새들이 40-50년생 아름드리 나무와 함께 살고 있는 도심에선 보기 힘든 「소생물권역(Biotope)」이다.
이곳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운 것은 지난해 3월. 한 건설회사가 이곳에 원룸주택을 짓겠다고 나서 오정골이 흔적없이 사라질 위기를 맞게 됐다. 이 소식을 들은 김정동(金晶東·목원대 건축학과)교수, 김조년(金照年·한남대 사회복지학과)교수, 박용남(朴容男·대전의제21 사무처장)씨 등 각계 인사 50여명은 오시모를 결성, 곧바로 오정골을 매입하기 위한 「땅 1평 사기운동」과 기금 모금에 나섰다.
전국에서 기금이 답지하기 시작했으나 건설회사측이 철거작업에 돌입, 오시모는 땅을 직접 매입하거나 기증받기는 어렵다고 보고 내셔널 트러스트의 또다른 방식인 제한약관을 통한 제3자 매입에 나섰다. 이는 뜻있는 제3자가 매입하되 개발을 않기로 약속하는 방식.
오시모는 오정골과 바로 인접한 한남대를 설득, 매입에 나서도록 한뒤 건설회사와 20여차례에 걸친 협상 등을 통해 끈질기게 중재한 끝에 지난해 12월 극적으로 20여억원에 매매를 성사시켰다.
오정골을 국내 최초의 내셔널 트러스트 성공사례로 기록시킨 오시모는 이제 충남 논산시 강경읍의 근대 건축물들을 지키기 위해 다음달 새로운 이름으로 확대 개편될 예정이다. 강경은 근대 개항초기 상업적 번영을 누리다 지금은 쇠락한 포구. 일제시대의 점포병용(店鋪倂用)주택과 금융기관, 관공서 등 근대 초기 건축물들이 산재한 남한에서 몇 안되는 「유적지」이다.
오시모 박용남사무처장은 『영국의 「내셔널 트러스트법」처럼 「자연 및 문화유산 보전을 위한 신탁기금법」 제정을 위한 청원운동도 추진할 방침』이라며 『경제적 뒷받침이 필수적인 운동인 만큼 시민들의 성원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문의 (042)256-2464
■내셔널 트러스트란 무분별한 개발과 관리소홀로 사라져가는 역사·자연유산을 보존하는 시민운동. 보존을 외치는데 그치지 않고 기금을 모아 직접 매입하거나 소유주로부터 보존 약속을 받는 방식 등을 사용한다. 100여년 전 영국에서 시작돼 전세계로 퍼졌다. 영국은 약 250만명의 회원과 22만㏊의 토지,성(城)을 비롯, 300여개의 역사적 건조물, 600㎞가 넘는 자연해안 등 막대한 자산을 보유, 관리하고 있다.
대전=전성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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