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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가족 이야기] 과학기술부 장관 서정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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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가족 이야기] 과학기술부 장관 서정욱

입력
2000.02.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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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가족 이야기] 과학기술부 장관 서정욱나는 장난감 욕심이 많은 아이였다. 활동사진기, 카메라, 라디오 등 당시로선 집안의 가보라 할 만한 것들이 모두 나의 장난감이었다. 장손으로 자란 나는 거침없이 이 가보들을 뜯고 조립하고 부수며 놀았다.

삼촌들이 보던 「라디오와 음향」 「무선과 실험」과 같은 과학잡지도 내 수중에 있었다. 삼촌 흉내를 내면서 돌로 만드는 광석수신기도 꾸며 보고, 잡지에 나온 회로도를 보고 진공관 라디오도 조립했다.

돈이 많이 드는 취미 때문에 부모님은 얼마나 힘드셨을까. 광복 후 토지개혁으로 집안이 타격을 입었지만 어머님은 조각난 라디오 때문에 나를 꾸지람하신 적은 한번도 없다. 좋은 취미에 빠진 덕분에 나는 실사구시(實事求是)의 과학기술자가 되었다. 호기심으로 무엇이든 뜯어보고 패러데이, 에디슨의 전기(傳記)를 읽고 자란 어린 시절이 오늘의 나를 만든 것이다.

서울 토박이인 나는 서당에 가지 않고 초등학교에 들어갔다. 집에서는 조부님이 한문을 가르쳐 주시고, 어머님으로부터 언문을 배웠다. 어머님은 내게 영어도 가르쳐 주셨다. 어머님은 일제 때 「이노우에(井上) 통신교육」으로 영어를 학습하실 정도로, 지금으로 말하면 신지식 여성이셨다.

일본에서 영어교재와 레코드판을 발송받아 축음기에 돌리며 영어를 배웠던 것이다. 부모님 결혼식 사진에서 웨딩드레스를 입고 계신 어머님 모습이나, 한복과 양복을 번갈아 입고 등의자에 앉아 있는 돌사진을 보면 집안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다. 나의 아버님은 고등학교 교장으로 정년을 하시고 도교육위원을 지내시며 평생을 교육에 바치셨다.

라디오를 고장냈다고 얼굴 한번 찌푸리신 적이 없던 어머님은 그러나 딱지치기나 개구쟁이 짓을 하느라 학교 숙제라도 잊는 날이면 호되게 꾸지람을 하셨다. 그리고 다음날 학교에서 쓸 연필을 곱게 깎아 필통에 가지런히 담아주셨다.

광복 후 초등학교를 마치고 중학교에 들어가자 갑자기 사회분위기가 살벌해졌다. 학교 안에선 선생님들의 사상이 좌우로 갈리고 밖에서는 신탁통치와 국대안을 둘러싼 찬반으로 테러, 파업, 동맹휴학 등이 일어났다. 그러나 나는 무선에 대한 취미와 열정 때문에 학교만 파하면 장사동으로 달려갔다. 당시 그 곳에는 무선기기나 라디오, 부속품 등이 즐비해 있어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나의 취미는 결혼으로 열매를 맺었다. 서울공대 재학중 아마추어무선의 개방을 위해 뛰어다니던 시절 후원자로 모신 분이 장인이 되셨다. 아마추어무선을 한다면 간첩으로 오인받기 십상이던 시절 장인어른은 우리를 믿고 보호해 주셨다. 미국 유학중 일시 귀국하고 보니 여중생이던 큰 따님이 대학을 나와 신부감이 되어 있었다. 단란한 가정을 이루어 딸을 셋이나 두었으니 아내의 노고에 감사할 뿐이다.

나는 세 딸의 입학식에 참석한 적이 없고 과외 한번 시키지 않았다. 어쩌면 나의 가족 이야기는 나의 반성문이 될 수 밖에 없다. 얼마 전 부부사랑 10계명이라는 TV프로를 보고 채점을 해보니 좋은 점수가 나오질 않아 아내에게도 내심 미안했다. 그렇지만 아이들의 장난감이나 학용품에는 인색한 적이 없었다.

레고 같은 장난감을 극성스럽게 골라 주었고, 컴퓨터도 신기종이 나오면 가장 먼저 들여놓았다. 부모님께서 내게 베풀어 주신 것을 딸들에게 갚겠다는 생각이 알게 모르게 있었을 것이다. 세 딸은 각각 불문학, 교육공학, 신문방송학으로 과학기술의 길을 걸은 나와는 다른 전공을 했지만 모두 컴퓨터에는 도사들이다. 지금도 잠자는 아이를 깨워 말썽난 컴퓨터를 손보라고 할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단잠을 깬 딸은 『공부 좀 하세요』라고 핀잔을 주면서 나를 돕는다.

지금은 사윗감을 찾고 있지만 마음대로 안 된다. 둘째처럼 재학 중에 짝을 짓지 않으면 아예 늑장을 부린다. 우리부부는 서로 책임을 추궁하다 말다툼도 한다. 딸에게 전화를 걸어 온 남학생들에게 호통을 친 것을 후회를 하고 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다행히 둘째가 첫째를 추월해 듬직한 사위를 보았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손녀는 가보 특호(特號)가 되었다.

얼마 전 세 딸은 저희들이 갖고 놀던 레고 장난감을 모두 차곡차곡 싸 갔다. 돌이 채 안 된 손녀에게 주기 위해서다. 대를 이어받는 장난감이야말로 우리 집안의 역사를 보여주는 셈이다. 가족의 대표로서, 그리고 부모로서 신경을 많이 쓰는 것은 아무래도 딸과 소녀의 장래이다.

여성의 지위가 높지 않은 현실이라 안정된 내조를 할 것인지 억척같은 사회참여를 할 것인지 고민이지만 각자의 선택에 맡기고 싶다. 어느 길을 택하든 경쟁사회에서 생존할 수 있는 전문 지식과 기술을 터득할 수 있는 가정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나의 가족이야기] 서정욱은 누구

1934년 서울 출생. 통신분야 핵심기술인 전전자교환기(TDX) 연구개발, 이동통신의 부호분할다중방식(CDMA) 세계 최초 상용화의 주역. 서울대, 미국 A&M대 전기공학과 졸업, 한국통신 부사장, 과학기술부 차관, SK텔레콤 대표이사 사장과 부회장, 초당대 총장 등을 거쳐 1999년 과학기술부 장관에 취임했다. 아마추어 무선과 PC통신이 취미이며 「평생 엔지니어」를 자랑으로 삼는 과학기술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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