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량한 일반시민이라도 한두번쯤은 들를 수 있는 경찰서 형사계. 지은 죄가 없어도 가슴을 쓸어내리는 곳인데 귀퉁이에 음산하게 자리잡은 피의자 보호실 속에 가둬지면 영락없는 「중죄인」 이 돼 오금이 저린다.경찰은 최근들어 피의자 보호실에 대한 개·보수를 통해 시설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기울여 왔다. 하지만 경찰서에 따라 보호실은 하늘과 땅차이다. 운이 없는 시민들은 여전히 「없는 죄」라도 만들어낼 것같은 분위기에 압도당하고 만다.
9일 밤12시 서울 A경찰서 형사계. 부부싸움을 하다 이웃의 신고로 잡혀온 권모(54)씨는 윽박지르는 형사에게 『왜 욕하는거요』라며 맞서다 그자리에서 수갑이 채워져 쇠창살이 쳐진 보호실에 갇혔다. 10여분 뒤 권씨는 『잘못했으니 풀어 달라』고 애원해 보지만 형사는 대답조차 않았다.
10일 밤 서울 B경찰서에 잡혀온 음주운전자 김모씨. 기소중지자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3시간여동안 보호실에 머물며 화장실 출입조차 제지당했다.
운좋은 시민들은 탁트인 개방형 보호실의 장판위에 앉아 조사차례를 기다린다. 그러나 나머지 사람들은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이나 퀴퀴한 마룻바닥에서 밤을 새야한다.
여성은 더욱 견디기 힘들다. 발 디디기조차 엄두가 안나는 지저분한 화장실 바닥, 용변보는 모습이 훤히 보일 정도의 낮은 벽 등으로 여성은 화장실 이용 자체가 두렵다. 아예 남녀구분 없이 피의자를 몰아넣는 보호실도 많다. 또 형사계에 공중전화기가 1대 설치된 곳이 대부분이라 휴대폰이나 전화카드가 없으면 꼼짝없이 외부와 연락마저 단절된다.
인권운동사랑방 박래군(朴來群·39) 사무국장은 『몇개의 시범용 시설이 마련됐다고 피의자 보호실의 실태가 개선됐다고 보기는 어렵다』면서 『경찰관의 행동을 규제하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만 보호실내 인권침해 시비가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훈기자
oneway@hk.co.kr
진성훈기자
bluejin@hk.co.kr
■[인권찾기캠페인] 署마다 시설 천차만별… 기준 시급
경찰서 형사계마다 한쪽 구석에 5-10평 크기로 마련해 놓은 피의자 보호실은 피의자들이 경찰조사를 받기 전에 기다리는 비공식 유치시설이다.
경찰서에는 이 밖에 경범죄 위반사범들을 즉결심판소에 보내기 전에 하룻밤 보호조치하는 즉심 대기실, 긴급체포된 범인 등을 수용하는 유치장 등이 있다. 하지만 이들 공식유치시설과는 달리 피의자 보호실의 시설기준, 운영에 대해선 뚜렷한 법규정이 없어 문제다.
이 때문에 경찰서마다 보호실의 환경이 제각각이다. 피의자를 형사계 의자에 앉힐지, 보호실 쇠창살 속에서 수용할지도 경찰관 마음에 달려있다.
서울 A경찰서의 경우 철창식 보호실 외에는 별도의 시설이 없어 연행된 사람들 모두를 이곳에 가둬 죄인 취급한다. B경찰서는 허리높이 철제 칸으로 둘러싼 반개방형과 철창식 보호실을 따로 만들어 죄의 경중에 따라 수용하고 있다. 반면 D 경찰서 등은 최근 완전개방형 보호실을 마련했다.
서울 강남경찰서의 한 관계자는『일반 피의자들을 어떻게 다뤄야 할 지 스스로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면서 『보호실 운영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이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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