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고위 외교관이 언론기고를 통해 외교부 운용상의 문제점과 인사난맥상을 지적해 파문이 일고 있다. 전례가 드문 일이라 황당하기는 정부나 여론이나 마찬가지다. 파문을 일으킨 장본인은 외무고시 출신의 노련한 직업외교관으로 본부에서는 핵심요직인 국제기구조약국장과 정책실장을 지냈고, 오스트리아와 필리핀대사를 거쳐 현재 본부 대기중인 이장춘대사다.이 대사는 10일자 문화일보에 게재된 기고에서 『미국은 국무장관이 대통령과 임기를 같이하고 겐셔 전 독일외상은 통독 때까지 18년간을 재임했다』면서 『김대중정부는 출범 1년10개월만에 3번째 외무장관이 등장했다』고 잦은 인사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 대사는 또 재임 6개월밖에 안된 차관보급 간부가 교체되고, 신설 9년도 안된 외교정책실장에 11번째 새 사람이 임명되는 상황아래서 지속적인 외교는 불가능하다고 썼다. 구구절절 공감가는 내용이다.
다만 외교부가 통상업무를 다루게 된 조직개편을 비판한 대목은 납득하기 쉽지 않다. 이 대사 자신도 오늘날의 외교업무 대부분이 통상·경제업무인 점을 잘 알 것이다. 특히 그 자신이 80년대초 모든 대외교섭업무의 창구 단일화를 골자로 한 이른바 「외교현대화 계획」의 실무 주역이었던 사실을 비추어 보면 그의 이번 발언은 더욱 이해하기가 곤란하다.
이 대사는 발언직후 파문을 의식했음인지 3월10일부로 사직서를 제출했다. 당초 물러나는 사람의 「뼈있는 한마디」 정도로 넘어갈듯 하던 외교부가 밤사이 대변인 논평을 통해 『공직기강 차원에서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일』이라며 징계의사까지 비쳐 오히려 파문을 증폭시키고 있다. 외교부의 자체판단이 바뀐 것인지, 아니면 밤새 외부로 부터의 「훈수」에 영향받은 것인지 알 길은 없지만 이것 역시 개운치 않기는 마찬가지다.
우리는 우선 정부가 이 대사의 지적사항을 겸허하게 수용해야 한다고 본다. 그의 신변에 관한 문제는 다음의 일이다. 조용히 내부적으로 할 얘기를 외부에 떠들었다고 징계 운운하는 처사는 속좁은 짓이다. 그의 말처럼 구멍가게도 주인이 자주 바뀌면 영업에 지장이 있는데, 하물며 국제사회에서 국가를 대표하는 외교관을 신발 바꿔 신듯 자주 갈아치워서는 안된다. 새 정부가 지난 정부를 비판할 때 가장 자주 거론했던 것이 인사의 난맥상이었다. 외교부만이 아니라 현정부의 인사 전반에 대해 신뢰를 보내는 국민이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에, 정부는 깊이 유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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