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논술주제2월19일자와 2월26일자는 김영민(金榮敏) 연세대 교수와 손동현(孫東鉉) 성균관대 교수가 출제해주셨습니다. (답안은 1,000자 이내)
■ 2월19일자 주제
(문제) 다음 두 제시문은 모두 잘못된 글이 사회에 미칠 수 있는 악영향에 대해 경계하고 있다. 이 두 제시문을 참고하여 『문학의 사회적 역할』이라는 주제로 논술하시오.
(제시문1) 대체로 글이 승하면 예가 번잡해지고, 예가 번잡해지면 속임과 거짓이 생기게 되며, 속임과 거짓이 생기게 되면 그 나라가 혼란해지는 것이니, 혼란이란 것은 멸망의 근본인 것이다. 글이 왕성하면 풍속이 더러워지고, 풍속이 더러워지면 백성의 뜻이 게을러지고, 백성의 뜻이 게을러지면 그 나라가 약해지는 것이니, 약하다는 것은 멸망의 근원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나라의 흥륭(興隆)은 반드시 문치(文治)로 말미암고, 나라가 멸망하는 것도 역시 문폐(文弊)로 말미암는다』라고 하는 것이니, 아아, 이것이 어찌 글의 죄라고 하리오마는 역시 죄를 글에 돌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장지연, 「문약지폐(文弱之弊)」에서)
(제시문2) 예술주의 문예라 하면 현 조선을 그리는 예술이 되어야 할 것이며, 인도주의 문예라 하면 조선을 구하는 인도가 되어야 할 것이니, 지금에 민중에 관계가 없이 다만 간접의 해를 끼치는 사회의 모든 운동을 소멸하는 문예는 우리의 취할 바가 아니다. (신채호, 「낭객(浪客)의 신년만필(新年漫筆)」에서)
■ 2월26일자 주제
(문제) 이 달 초 우리 나라의 정치계에는 전에 없던 획기적인 일이 일어났다. 여러 시민운동단체들이 연합하여 「총선시민연대」라는 것을 조직하고 다음 총선에서 국회의원으로 공천되면 안될 전 현직 국회의원을 선정, 그 명단을 공표한 것이다. 이 행동의 영향력은 엄청난 것으로 여겨졌으나, 그에 비추어 볼 때 이 행동이 적어도 그 시점에서는 선거운동에 관한 실정법을 위반하는 것이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입법부나 행정부 뿐 아니라 사법부의 권위까지도 넘어서려는 이런 운동이 과연 법치 민주국가에서 허용될 수 있는 것인지, 시민 불복종운동의 성격까지 띠는 이 활동을 놓고 우리는 우리의 정치사회적 현실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근년에 들어 이른바 NGO(non governmental organization; 비정부 조직)라 불리는 시민운동의 활동이 선진국에서도 크게 활발해지고 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이며, 이들의 활동이 정당한 것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전제 조건이 충족되어야 할지, 자신의 견해를 논술해 보시오.
■입선자 명단(5명)
중대부고=김세익 서울외고=박혜란 마산여고=이지영 전북 원광고=양준명 대구 시지고=정민혁
-원고마감은 매주 월요일. 우편:110-792 서울 종로구 중학동 14 한국일보 사회부 논술담당자앞 전화:(02)724-2313∼8 팩스:(02)739-0266
■[논술강평] 철학적 접근없어 아쉬움
이번 주에는 예시문이 지니고 있는 숨은 의미를 예리한 통찰력으로 읽어내는 방법을 연습하기 위해서 인간의 존재문제를 탁월한 상징적 이미지로 나타내고 있는 시인 서정주의 대표작인 「화사(花蛇)」를 살펴보기로 했다.
인용문으로 제시되었던 「화사」는 역사적인 관점에서 보면 식민지 시대에 젊음을 보냈던 서정주가 암흑 속에서 신음하는 민족의 슬픔과 괴로움에 대한상징적인 표현으로 읽을 수도 있다. 그러나 동시에 존재론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 시는 육체를 가진 자의 유형당한 슬픔과 괴로움의 호흡이며, 니체가 말한 디오니소스적인 비극과 한(恨)의 육성이기도 하다. 그가 이렇게 뜨거운 호흡을 하게 된 것은 현실세계의 벽을 뚫고 영원의 바다에 도달할 수 있는 단서를 육체의 감각세계와 디오니소스적인 아픔에 스민 내면적인 빛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리라. 이렇게 해서 그는 플라토니즘에서 말하는 것처럼 뜨거운 육체 속에 사랑처럼 깊이 묻혀 있는 「실체」로 향해 「황금맥(黃金脈)」의 길을 찾게 되고, 그의 육성의 몸부림은 지극히 낭만적인 것이 된다.
즉, 그는 감각세계의 「뒤안길」로 「사향박하(麝香薄荷)」처럼 화사하게, 그리고 「배암」처럼 스며드는 전율로서 아득히 먼 「푸른 하늘」로 향하고 있음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는 「원통히 물어뜯는」 살의 아픔 속에 푸른 하늘이 상징하는 영원의 빛이 와 있음을 느낀다. 그러나 이와 같은 표면적인 운동은 시편 「화사」 내부에 이중구조가 있음을 시사해 주고 있다. 즉,속세적 인간의 육신을 상징하는 「화사」는 그것이 지닌 음향 속에 양면세계를 연결시켜주는 향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은 또 「꽃」과 「뱀」이라는 두 가지 구성요소의 결합체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그래서 서정주는 그의 시 가운데서 「화사」를 보고 한번은 징그럽다고 말하고 그 다음에 와서는 「꽃대님」같이 아름다웁다고 말한다. 우리가 「꽃」을 영원의 빛, 광원(光源)의 피사물이라고 하면, 그의 「화사」는 이러한 영원의 빛이 서리어 있는 인간의 육체를 상징하고 있음에 틀림이 없다. 그가 「돌 팔매를 쏘면서, 쏘면서 사향(麝香) 방초(芳草)ㅅ길/ 저놈의 뒤를 따르는」 것은 「석유 먹은 듯 석유 먹은 듯 가쁜 숨결」 속에서, 「피 먹은 양 붉게 타오르는 고운 입술」로 배암처럼 스미는 전율 속에서 볼 수 있는 「꽃대님보다도 아름다운 빛」을 포착하기 위함이라 하겠다.
지금까지 「화사」를 두고 논의해온 바와 같이, 이번 주 문제의 내용은 겉으로 보기에는 평이하지만 낭만주의와 관련이 있는 철학적인 문제를 담고 있다. 그래서 경우에 따라서 문학적인 소양이 부족한 사람들에게는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지시문을 잘 읽은 사람은 출제자의 의도에 따라 「화사」와 인간운명을 비교하면서 텍스트를 바탕으로 존재문제의 실상을 밀도 짙게 풀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출제자는 이 시를 읽고 그 속에 나타난 이미지를 통해서 존재문제를 논할 것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수험생들은 성서(聖書)에 등장하는 우리의 조상인 이브가 신의 명령을 듣지 않고 선악과(善惡果)를 따서 먹은 죄로 천형을 받은 인간의 운명과 꽃뱀의 그것을 비교하면서 주제를 탐색할 수 있었으면 보다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주에 응모한 대부분의 글들은 지시문을 정확히 읽어 내지 못하고 있어서 적지 않은 실망을 주었다. 부족하지만 최우수작으로 뽑은 김영환(포항제철고)의 글은 비교적 주어진 문제에 가장 근접하고 있다. 이 글은 꽃뱀이 지니고 있는 이중구조, 즉 아름다움과 징그러움을 분석하고 그것을 중심으로 이성과 야성문제를 논의하고 있기 때문에 나름대로 논리적인 짜임새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시 속에서 이브의 전설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이 문제를 풀어 나갔기 때문에 시 속에 나타난 존재문제를 철학과 신화적인 문맥으로는 접근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그러나 난해한 시를 구조적으로 분석하려는 노력은 높이 사고 싶다.
우수1로 뽑은 송승원(배문고)의 글은 도입부가 부자연스럽지만 나름대로 통일성과 짜임새 있는 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글 역시 위의 강평에서 볼 수 있듯이 출제자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해서 작위적인 글이 되고 있다. 비록 시를 해석하는 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훌륭한 시 해석은 텍스트에 기초를 둔 통찰력과 논리문제를 최우선으로 해야만 한다.
우수2 강민구(서령고)의 글도 짜임새는 있지만 필자의 요구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이태동(李泰東·서강대 교수)
■ 최우수 김영환
인간은 여타 동물들과 다른 존재이길 원한다. 「짐승같은 놈」등의 표현은 인간과 다른 동물을 구별하는 동시에 인간만의 특질-인성의 존재를 의미한다. 이성은 인성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 예이며 인간은 이를 통해 고귀한 가치를 희구한다. 그러나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짐승들과 분리할 수 없는 동물이자 야성을 지닌 존재이기도 하다. 프로이트가 지적한 성과 같은 야성의 욕구는 짐승의 그것을 탈피하고자 하는 욕구와 충돌한다. 모순된 욕구로 갈등을 겪는 인간. 서정주의 시 「화사」에서도 이러한 갈등을 읽을 수 있다.
우선 「배암」의 이중적 이미지-아름다움과 징그러움-에 주목해보자. 아름다움은 「사향과 박하」그 달콤하고 도발적인 야성의 관점이며 징그러움은 이를 억압하는, 야성에의 도취를 경계하는 관점이다. 이중의 잣대를 적용하여 욕망을 억압하는 현실. 그렇기에 「커다란 슬픔」, 삶의 고통을 느끼게 된다.
이어 혓바닥을 잃은, 즉 언어와 사변을 거세한 욕정의 붉은 아가리와 푸른 하늘이 대립한다. 푸른 하늘을 차갑고 냉정한 이성의 세계로 파악한다면 적과 청이 강렬히 대립되는 이미지에서 갈등의 증폭을 읽을 수 있다. 욕정의 상징을 돌팔매로 쫓으면서도 가쁜 숨으로 그 뒤를 쫓아 욕정으로 회귀하는 자아. 이 불가분의 욕망은 이성과 야성, 인간의 야누스적인 면을 드러낸다.
억압된 욕망은 「바늘에 꼬여 두르는」 새디즘으로 표출되기에 이른다. 이러한 극한 야성의 심리상태에서 「붉게 타오르는 고운입술」이라는 긍정적 이미지가 등장, 야성과 동화되기에 이른다. 곧 순네라는 대상에게 「스며라 배암!」이라는 직설적 감정을 토로하게끔 되는 것이다.
이 극한 야성의 이미지를 욕정의 극치로 단정지을 수만은 없다. 이는 단순한 리비도이기에 앞서 원시적인 힘, 인간을 움직이는 원초적인 생명력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것을 부정한다면 인간이라는-세대를 이어가는 생명체도 존재할 수 없다. 문제는 그 욕망의 양면 어디에도 편벽됨이 없는 인간의 자각이라 하겠다.
인간이라는 미묘한 존재의 본질에 대한 성찰은 이제까지도 그래왔듯이 난해하고도 흥미로운, 오직 인간만의 몫일 것임에 틀림이 없다. 그 문제에 대한 고민을 통해 인간은 스스로에 대한 깊은 이해를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 우수1 송승원
최근 여고생과 중년남자의 비정상적인 애정을 다룬 영화 「거짓말」이 크게 논란을 일으켰다. 예술을 빙자한 상업적 포르노영화냐, 성을 통하여 인간을 통찰한 예술영화냐 하는 것이 이 영화에 관한 주된 쟁점이 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에서 왜 성(性)은 태고적부터 인간의 화두로 등장하며, 끊임없이 논쟁의 소재가 되는가 하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성에 대한 막연한 환상과 동경이 만연한 작금의 사회풍조에 대한 반성의 계기로서도 이러한 고찰은 필수적이다.
「…석유 먹은 듯 가쁜 숨결이야」,「…피먹은양 붉게 타오르는…」 서정주의 시 「화사」에서 나오는 표현들은 상기한 바와 같이 자못 도발적이요, 색정적인 면을 드러낸다. 또한 성에 맹목적으로 도취한 듯한 인상까지 준다.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프로이트에 따르면 인간의 욕망은 두 체제에 의해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그 두 가지는 에로스와 타나토스이다. 전자는 인간의 삶을 영위하기 위해 원동력이 되는 인간의 생의 본능이요, 후자는 인류의 본래적 모습이었던 무기물로 돌아가려는 죽음의 본능이다. 그런데 생의 욕망인 에로스를 충족시키는 것은 다름아닌 성이다. 성을 통하여서 인간은 자신의 존재를 후대에 각인시켜왔고 이것은 지금 인류가 존속하는 충분조건이 되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관능적인 표현이 시의 곳곳에 산재되어 있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요, 생명을 발현시키는 성에 대한 전반적인 탐구를 위해서라고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시적 화자는 「…저리도 징그러운 몸둥아리냐」,「다라나거라 저놈의 대가리!」등에서 막연한 성의 추구만이 인간의 본연적 모습이 아니라는 사실을 제기하고 있다. 즉, 인간이 본능적인 측면에서는 「화사」에게 이끌리지만, 이성적 측면에서는 적절한 제재장치를 작용하여 자신의 의식까지 잠식하는 성의 탐닉을 경계한다는 것이다. 이는 시적 자아가 중용적인 성 가치관을 지향한다는 것을 드러낸다.
인간이 성욕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정 못할 자명한 사실이다. 시적 자아는 이러한 인간의 일면을 관능적 심상으로 역설하였다. 이러한 인간본성의 탐색으로써, 미묘한 성의 영역에 대한 사색의 기회와, 인류의 존재와 생에 대한 거시적 성찰을 제공하는 것이다. 진지한 사고를 거치지 않은 무분별한 성문화가 범람하는 지금, 시 「화사」는 어떻게 성을 바라보아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한 해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우수2 강민구
「인간은 자연과 대립하기 위한 존재이다」 최근 노자의 사상에 대한 해석 강의로 화제가 되고 있는 도올 김용옥 교수의 말이다. 모든 자연현상은 무질서가 증가하는 방향, 즉 모여 있던 것이 흩어지고 큰 것이 잘게 부서지는 등의 방향으로 전개되려 하지만 인간은 흩어진 물질로부터 자신의 몸을 만들고 흩어진 것을 모으고 더 큰 것을 만드는 활동을 한다. 자연계의 기본법칙과는 상반된 방향으로 전개되는 것이다. 이것을 인간의 정신적 측면에 적용시켜 보자.
인간의 가장 큰 특징은 이성을 가진다는 것이다. 물론 인간은 욕망도 가지고 있다. 이 욕망은 자연계에 존재하는 기본 원리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은 이성에 의해 그것을 억제하고 도덕, 윤리, 법 등의 규범을 만들었다. 이러한 규범들은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기 때문에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규범은 인간의 본능과 상반된 것이기 때문에 서로 충돌하게 되고 갈등을 야기시킨다.
서정주의 「화사」에서도 이러한 갈등이 나타난다. 돌팔매질을 하면서도 뱀꼬리를 따라가고 징그럽다고 느끼면서도 사향 방초의 향기를 느끼는 것은 시적 화자의 마음 속에서 이성과 본능간의 갈등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인간의 이성은 본능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이성이 욕망을 완전히 지배하는것은 불가능하다. 물론 그것을 가능하게 한 성인들이 있지만, 그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힘든 일이다. 스티븐슨의 소설 「지킬박사와 하이드」에서 지킬박사는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욕망을 하이드란 인물에게 통째로 떼어주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명예와 사회적 지위를 지키고자 하였다. 그러나 그는 자신에 대한 도덕적 염증때문에 영원한 하이드가 되어버렸다. 억압된 욕망이 자신도 주체할 수 없을 만큼 커진 것이다.
서양에서는 인간을 이성을 지닌 동물이라고 보았다. 쾌락을 추구하지만 그것을 제어할 수 있는 이성을 가진 존재라는 뜻이다. 또한 그것들의 적절한 조화를 추구하기도 하였다. 그를 통해 볼 때, 진정한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쾌락을 추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규범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자제할 줄 아는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