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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과유불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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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과유불급

입력
2000.02.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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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9월 전국의 중·고교 운동장이 검투사 훈련장처럼 달아오르던 시절이 있었다. 「체력장」이라는 세계적으로 희귀한 고입·대입 체력검사 때문이었다. 턱걸이 달리기 등 대여섯 가지의 검사항목 중에는 수류탄 던지기같은 전투형 종목까지 있었다. 입시에서 1점이 아쉬운 학생 학부모들에게 체력장은 또하나의 공포였다. 운동장에서 몇초, 몇㎙가 모자란 탓에 진로가 꺾인 인생들도 있을 것이다.■장장 20여년간 시행됐던 체력장은 돌이켜 생각할 수록 유신과 군사독재 정권의 단선적 사고가 빚어낸 씁쓸한, 그리고 범국가적인 코미디였다. 체력장을 위한 체육과외까지 생겨났고, 연습 또는 검사도중 학생이 사망하는 등의 불상사도 끊이지 않았다. 대리시험 채점부정 따위는 차라리 부작용의 곁가지에 불과했다. 체력은 국력이라는 시대 구호에 온 국민이 휘둘리고 난리법석을 떨어야 했던 그 시절의 초상이 부끄러울 뿐이다.

■요즘 21세기 디지털경제의 선풍에, 정부부처들의 대책 짜내기가 경쟁적이다. 이중에는 정보화 교육 확대책으로 「컴퓨터 소양 인증제」의 도입 방안도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들린다. 고교 과정에 컴퓨터관련 과목을 넣어 대학입시의 평가항목으로 반영한다는 안이다. 세부 운영안과 확정 여부는 앞으로 지켜봐야 할 일이지만 걱정부터 앞선다.

■디지털 경제는 창의적 토양에서 자라나는 자유분방한 유기체다. 최근 민간기업들이 사원 공채에 학력·전공 불문, 심지어 반바지 차림 근무도 허용하겠다는 등의 파격적 조건을 내거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혹시라도 전국민을 검투사화하려는 듯하던 과거 체력장 식의 재현이라면, 그런 전체주의적 발상은 디지털문화와는 상극이다. 예능교육마저 내신용으로 천편일률화한 게 우리 교육의 실상 아닌가. 정부는 국민의 디지털 마인드를 끌어 올리는 환경을 조성하는 선에서 손을 떼는 게 좋다. 이런 경우에야 말로 모자람이 지나침보다 낫다. /송태권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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