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제 열 여덟살도, 제2의 서태지도 아니다. 나는 음악하는 김사랑일 뿐이다」신인 가수 김사랑(19)은 노래가 아니라 CF로 우리 곁에 왔다. 『나는 열여덟살이다, 나는 018이다, 나는 만팔천원이다』 열여덟살, 그리고 만팔천원은 이상한 뉘앙스로 다가왔다. 누구를 돈으로 사는 것이 허락되는 이 땅에서 이런 CF는 꽤나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제2의 서태지」라니. 조PD에 이어 「제2의 서태지」란 닉네임으로 불리는 가수가 또 하나 늘었다. 어떻게 봐야 할까. 그를 만났다.
_제2의 서태지란 말에 사실 거부감이 든다, 자유롭게 음악을 해야 할 신인이 「제2의 누구」라는 수식을 들고 나오는 것은 상업적 방편이란 생각이 든다.
『제2의 서태지란 말. 너무 많이 들었다. 신인이 「나는 제2의 서태지다, 나는 천재다」 이렇게 말하고 나오면 거부감이 많이 들 것 같다. 방송이나 언론에 너무 부풀려지는 것 같아 화가 났다. 말할 기회가 없어 더욱 그랬다. 제2의 누군가가 되고 싶진 않다. 그저 음악을 사랑하는 음악인으로 봐달라』
_노래가 처음 나왔을 땐 반응을 얻지 못하다가 드라마나 CF에 나와 노래가 「뜨면」 가수들은 「노래가 도대체 무언가」라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CF 때문에 떴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음반 기획부터 CF를 염두에 두었다는 말도 있는데 결코 아니다. CF를 통해 떴다고 말한다면 음악하는 사람으로 화가 난다. 그것으로 대중에게 알려지는 데 도움이 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나의 음악을 평가하는 데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_고교를 자퇴했는데 이유는. 학교라는 틀을 빠져 나오는 것이 두렵지는 않았나.
『고교 1년 때 자퇴했다.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으면 막지 않겠다는 것이 부모님 입장이었다. 학교는 하나의 사회적인 틀이다. 그러나 그 안에 있다고 안전이 보장된 것은 아니다. 그 틀을 부수고 싶었다. 공부나 학교, 선생님이 싫어서가 아니었다. 음악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_립싱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쇼 프로에서 딱 한 번 립싱크를 해봤다. 입만 벙긋거리고 있는 내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비웃는 것 같았다. 사실 가수가 라이브를 해야하는 데 목상태가 좋지 않으면 정말 힘든다. 하지만 컨디션이 어떻든 라이브를 했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 생각이다』
그는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컴퓨터로 「장난 삼아」 음악을 만들기 시작했다. 중학교 때 「작곡」이라 부를 수 있는 노래 완성, 그리고 자퇴 후 「청년단체」 등 10여 밴드에서 활동, 그리고 지난해 11월 첫 음반 발표. 프로듀서 작곡 작사 편곡 보컬 랩에 기타 베이스 드럼 건반을 다루고 컴퓨터 프로그래밍도 직접 한다. 그러나 그는 「필요한 만큼만」 악기를 배우고, 사용한다. 연주소리 하나에 매달리고 그것을 위해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 천착 보다는 섭렵, 그것도 자기 취향대로 세상을 재조립하는 요즘 10대들의 세계관 그대다.
자신감이 있으되 턱없는 수준은 아니다. 『1집 음반 「나는 열여덟살이다」는 대중성에 신경을 썼다. 오히려 그 점 때문에 마니아나 대중, 양쪽에서 외면을 받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자평한다. 멜로디에 치중한 「Feeling」, 「Rain」, 힙합 스타일의 「Keep The Groove」, 정글(테크노에 강한 아프리카식 드럼비트를 가미한 음악) 느낌의 「4D」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맛을 보여 주는 음반은 자평보다는 수준급. 힙합, 발라드 스타일에 맞춰 다양한 음색을 구사하는 보컬은 원맨 밴드 가수의 매력을 배가한다. 『만들어 놓은 곡이 40, 50곡에 달하기 때문에 활동을 접고 2집을 준비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김사랑. 벌써 2집이 기다려지는 만만찮은 신인이다. CF만이 그를 「띄운」 것은 아니었다.
81년생 김사랑. 『인기요? CF 내용은 기억해도 아직 제 얼굴은 잘 못 알아 보던데요』 /류효진기자
박은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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