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이들 입만 열면 "사랑·이별"『설마했던 네가 나를 떠나 버렸어… 사랑했으니 책임져』 『내게 그런 핑계대지마…』 서울 강남 A초등학교 4학년생 학부모 김모(41)씨는 작년 가을 학교 운동회에 참가했다가 깜짝 놀랐다. 운동회 내내 스피커를 타고 왕왕 울려대는 노래는 뜻밖에도 한창 인기를 누리는 대중가요들이었기 때문이다.
『동구밖 과수원길 아카시아꽃이 활짝 폈네…』 하고 고운 동요가 아스라이 울려퍼지는 교정을 상상하며 아이들 손 잡고 학교를 찾았던 김씨는 사랑타령 유행가에 귀가 멍해져 씁쓸하게 발길을 돌려야 했다.
서울 마포구에 사는 주부 박모(30)씨도 이른 아침 근처 초등학교에서 울려나오는 음악소리에 황당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등교길에 학교에서 울려퍼지는 노래는 대중가요 일색. 「사랑」「이별」 등 초등학생들에게는 별로 바람직하지 않은 가사가 학교 스피커에서 천연덕스럽게 쏟아져나오는 것이다.
학교 안에서조차 동요는 학생들의 입을 떠나버렸다. 대신 격렬하고 말초적인 가사와 리듬의 가요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 가장 싫어하는 수업이 음악 『요즘 아이들은 가장 싫어하는 수업이 음악입니다』
서울 M초등학교 한모(40)교사의 하소연이다. 한 교사는 『학생들이 동요를 따분해하고 잘 부르려고 하지 않아 수업진행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오죽하면 운동회에서 대중가요를 틀겠느냐』고 반문한다. 이같은 사정은 어느 초등학교나 마찬가지다. 어려서부터 가요에 익숙해진 초등학생들에게 동요는 「재미없고 수업시간에만 부르는」 노래일 뿐이다. 음악시간의 인기가 떨어지다보니 몇몇 초등학교는 아예 동요가 녹음된 테이프만 몇번 틀어주고 마는 때우기식 음악수업을 하기도 한다.
결국 초등학생들은 6년동안 음악교육을 받았어도 교과서에 실린 동요 150곡 가운데 외워 부르는 동요는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서울 K초등학교 정모(45·여)교사는 『교사들 사이에선 초등학생들이 제대로 부를 줄 아는 동요는 「과수원길」과 「고향의 봄」이 고작이란 얘기가 있다』며 『음악시간에만 부르고 밖에선 입에 올리지 않는 상황에서 어쩔 수가 없다』고 말한다.
■ 대중매체 동요 홀대도 한몫
이처럼 「동요 상실」 현상이 극심해진 것은 TV등 대중매체가 동요를 홀대하는데다 학생들의 관심을 동요로 끌어올 수 있는 학교의 유인책도 별로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파랑새동요연구회 이수인(李秀仁) 회장은 『다양한 음악 수업방식과 동요 개발이 시급하지만 전문역량을 갖춘 교사가 부족한데다 교육계의 관심도 동요와는 담을 쌓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 회장은 『그 배경에는 동요의 중요성을 모르는 교육당국과 사회의 무지가 깔려 있다』고 주장한다. 동요작곡가 윤희중(尹熙重)씨는 『즐겨 부르는 노래의 가사와 리듬은 결국 그 사람의 의식을 지배하게 된다』며 『아름다운 동요를 학생들이 즐겨부를 수 있도록 사회 전체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동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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