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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에세이] 틀린것을 틀렸다고 말하는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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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에세이] 틀린것을 틀렸다고 말하는 용기

입력
2000.0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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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일을 정확히 하고 어디서든 당당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내가 특별히 그렇게 살고자 한 데는 두고두고 잊을 수 없는 한 사건이 있기 때문이다.20여년전 내 고향 강원도 영월은 곳곳에서 고추 농사를 지었다. 붉은 황토에서 자란 고추는 매운 맛이 강하고 빛깔 또한 고와 다른 지역의 고추보다 값을더 받았다.

우리 집도 고추농사를 많이 지어 수확기가 되면 지붕이고 마당이고 뜰이고 온통 고추가 널려 있었다. 그날도 아버지는 박대포라는 별명을 가진 장사꾼과 흥정을 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한푼이라도 고추금을 더 받으려 했고 박대포는 낮추려고 언성을 높였다.

마침 육촌 오빠와 몇몇 아저씨들이 흥정은 붙이고 싸움은 말리라 했다며 고추금 흥정에 합세했다. 아버지는 이들의 응원에 힘입어 흡족하게 흥정한 뒤 나를 불렀다. 그것은 평소 내가 누구보다 셈이 밝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에 고추값을 오차없이 정확히 셈하라는 뜻에서였다.

나는 여느 때처럼 공책을 펴놓고 계산을 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육촌오빠와 이웃 아저씨들이 암산으로 해낸 계산은 똑같이 나왔으나 나의 계산은 틀렸던 것이다. 틀림없다고 생각했는데 틀렸다니, 얼굴을 들수가 없었다. 언제나 우리 딸이 똑똑하다고 자랑스러워했던 아버지는 침을 바르며 열심히 지폐를 셀 뿐이었다.

다음날 새벽이었다. 단잠을 자고있는데 아버지의 목소리가 다급하게 들려왔다. 『어서 일어나 보거라. 어제 고추판 것이 잘못됐구나. 다시 한번 계산해봐라』

아버지는 새벽에 깨 어제 팔았던 고추값을 암산하다 어딘가 이상해 나를 깨웠던 것이다. 나는 정신이 번쩍들어 아버지가 불러주는대로 계산했는데 원래 내가 계산했던 것이 맞는 게 아닌가.

아버지는 조반도 못드시고 100리 길이나 되는 충북 제천까지 달려가 10만원을 찾아왔다. 그날 나는 나 자신을 당당하게 내세우지 못한 것을 두고두고 후회했다. 그리고 그 일을 계기로 나의 주장을 정확하게 밝히려고 애쓰고 있다.

/고순자·경기 가평군 외서면 청평8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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