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출범이후 세 차례의 선수협의회파동이 있었다. 공교롭게도 그 이면에는 항상 트레이드라는 변수가 자리했다. 1988년 선수회결성이 구단들의 집요한 반대공작으로 무산된후 프로야구사상 최초의 빅딜이 있었다.당시 선수회주축멤버였던 롯데의 김용철, 최동원이 삼성의 장효조, 김시진과 맞트레이드됐다. 1997년 선수회를 다시 추진하던 LG의 이상훈도 어찌보면 선수회때문에 외국에 진출하게 됐다고 볼 수 있다.
구단으로서는 선수회다 연봉협상이다 해서 사사건건 마찰을 일으킨 이상훈이 눈엣가시같은 존재였다. 그래서 LG는 이상훈을 국내팀이 아닌 외국팀에 트레이드시켜 버린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닌 성 싶다. 올 시즌 스토브리그를 달구고 있는 선수회파동의 주역은 양준혁(해태)이다. 해태의 양준혁이 아니라 현대의 양준혁이었다면 선수회문제는 어떻게 되었을까. 사실 양준혁은 지난 시즌을 마친 10월에 구단에 트레이드를 자청했다.
지난 시즌 초 삼성에서 해태로 이적한후 적응에 실패한 탓에 다른 팀에서 뛰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었기 때문.
지난 시즌중 양준혁은 LG 김재현과 맞트레이드, 현대 위재영과 빅딜설 등 트레이드설의 진원지였다. 모두 불발에 그쳤지만 야구인이라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만 했다. 해태도 탐탁치 않은 양준혁의 트레이드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해태는 부랴부랴 예전부터 좌타자인 양준혁을 선호하던 현대에 추파를 보냈다. 현대는 해태가 제시했던 「위재영+현금」을 놓고 저울질하다가 정중하게 거절했다. 그래도 양준혁이 그리웠던 현대는 전준호와 투수를 묶어서 트레이드하자고 역제의했다.
해태는 장고를 거듭한 끝에 결론을 내리지 못해 양준혁 트레이드는 물건너간듯했다. 하지만 현대는 최후의 카드를 빼들었다. 신인 투수 박장희에다가 현금을 얹어주겠다는 조건을 제시한 것. 고민하던 해태가 현대의 카드를 받아들이기로 할 즈음 갑자기 선수회문제가 불거졌다.
가뜩이나 선수회결성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여온 현대는 황급히 발을 뺄 수 밖에 없었다. 괜히 호랑이 한 마리를 키워 낭패를 보기 싫다는 판단에서 였다. 가정이기는 하지만 양준혁이 현대로 트레이드됐다면 선수회문제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상황으로 전개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정연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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