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합니다. 사실 털어 먼지 안나는 곳이 있겠나하고 시작했습니다만 아무리 해도 없더군요. 정말 존경합니다』1986년 한 회사의 중역이 우리 사무실을 찾아와 한 이야기의 한 토막이다. 물론 그의 사과 한마디가 밑도 끝도 없는 이상한 음모론에 시달린 불쾌함을 완전히 상쇄시키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일단 음모론의 공세가 끝났다고 생각하니 후련했던 기억이 새롭다.
당시 우리는 화학조미료 덜 먹기 운동을 펴고 있었다. 한국인의 1인당 화학조미료 소비량이 세계적으로도 많고 어린이 뇌손상을 가져올 수 있는 부작용이 있으니 덜 먹자는 운동이었다. 우리는 화학조미료 사용실태와 인체에 미치는 영향 등을 조사해 발표하고 세미나 등을 통해 유해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당시 조미료를 만들던 회사는 우리의 캠페인을 특정 지역의 기업을 죽이기 위한 음모로 몰고갔다. 소비자 운동을 하는 우리를 사상이 불손한 세력으로 몰고가려 했고 나의 고등학교 후배를 동원, 캠페인 중단을 요구하기도 했다.
음모에는 그 회사만 나선 게 아니었다. 정보기관의 기관원이 사무실에 와 앉아있기도 했고, 자기 사무실로 좀 가자는 주문도 했다. 담당 공무원은 화학조미료의 「화」자도 꺼내지 말라며 겁을 주었다.
캠페인이 수출에 나쁜 영향을 미치고 사회를 시끄럽게 만든다는 게 그들의 지적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좀 어처구니없고 논리도 약한 주장이지만 그때만 해도 지역감정과 사상적 시비만 활용하면 웬만한 것이 통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그 회사의 사장이 누군지도 몰랐던 우리는 특정 지역 기업 죽이기는 말도 안된다며 펄쩍 뛰고 캠페인을 계속했다. 그러자 그들은 우리의 약점을 잡기 위해 뒤를 캤으나 기업으로부터 돈을 받지도 않았고 핵심인물이 과격분자도 아니란 사실만 확인했으며 결국 그 중역이 찾아왔던 것이다.
당시 음모론 때문에 우리가 캠페인을 포기하지는 않았지만 기분이 매우 나쁘고 찜찜했던 것만은 사실이다.
한데 14년이나 지난 지금도 그런 이상한 음모론을 퍼뜨리는 자들이 존재하고 있다. 실체도 없는 음모론때문에 고통을 받았던 그때를 돌아보면서 음모론이 발 못디디는 사회가 어서 왔으면 하는 바람을 다시 한번 갖게된다.
/송보경·소비자문제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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