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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실에서] 본다는 건 쾌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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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실에서] 본다는 건 쾌락이다

입력
2000.02.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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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듣고, 만지고, 냄새를 맡고, 맛을 느끼는 기능은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게 없다. 하지만 잘 보는 것이 소원인 안과 환자를 늘상 접하는 필자에겐 당연히 보는 즐거움이 그 중 최고가 아닐까 생각된다.수술로 시력을 회복한 한 환자의 이야기이다. 보이지 않던 한 쪽 눈이 갑자기 잘 보이니 그 놀라움이야 오죽 하겠는가. 수술 다음 날 안대를 떼고는 마냥 신기하고 좋아서 하루 종일 병원 곳곳을 돌아다녔다고 한다. 밤에는 수술받은 다른 환자들과 늦도록 수다를 떨어 옆 병실의 환자들까지 잠을 설치게 만들었다.

그런데 얼마되지 않아 고민이 하나 생겼다. 수술한 눈이 수술받지 않은 멀쩡한 눈보다 잘 보인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수술이 잘 돼 그런 것으로 그냥 넘어가면 좋으련만, 이런 경우 필자가 경험한 대부분의 환자들은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다. 시무룩한 표정으로 찾아 와서는 반대 편 눈도 수술해 달라고 요구하는 게 보통이다.

그냥 지내라고 아무리 설명을 해도 이대로는 불편해서 못살겠으니 제발 수술을 해달라고 막무가내로 나온다. 한 쪽 눈이 안보이던 때 보다 지금이 더 불편하다는 것이다.

독자들은 이 환자의 심정이 잘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한 번 상상해 보라. 최소한 필자가 경험한 바로는 상당히 많은 환자들이, 아니 당장 나 자신이라도 그런 상황에선 자유롭지 못할 것 같다.

이렇게 잘 보고 싶은 욕망은 끝이 없다. 안경을 쓰고 잘 보는 것도 모자라 레이저로 근시수술을 하고, 안과적으로 최고시력이라고 할 수 있는 1.0도 모자라 2.0을 위한 레이저치료법이 연구되고 있다. 근시나 노안(老眼) 환자가 수술로 이전 시력을 회복했을 때 느끼는 즐거움, 아니 쾌락은 마치 본인이 다시 젊어지는 느낌을 갖게 하는 것 같다.

그러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은 치료를 통해 시력이 좋아지기 보다는 아직도 그렇지 못한 경우가 훨씬 많다는 것이다. 맑고 푸른 하늘은 늘 우리 머리 위에 있는데도 우리는 그 하늘을 바라보며 살지를 못한다. 신이 우리에게 주신 보는 즐거움, 보는 쾌락을 맘껏 즐기면서 살 일이다.

/홍영재·세브란스병원 안과 교수·객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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