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의 16대 총선 공천 구도에 대지진이 일기 시작했다. 진앙지는 동교동계의 좌장으로 실세 중 실세로 꼽히는 민주당 권노갑(權魯甲)고문. 그의 16대 총선 불출마 선언은 여권 공천 구도의 핵심 몇 가지를 미리 가늠케 하는 중요한 정치적 사건으로 평가된다.우선 민주당 공천이 원내·외 중진 및 현역 의원들의 대규모 물갈이를 통한 사실상의 「여권 새판짜기」가 될 것임을 강하게 시사해 주는 증표로 해석된다. 사실 여권에서 권고문의 16대 원내 재진입을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심지어 시민단체가 그를 공천반대 명단에 포함시켰을 때에도 『그래도 권부(권고문의 애칭)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이제 여권 안에선 『물갈이에 안전지대는 없다』는 얘기가 정설로 자리잡을 전망이다. 설 연휴를 전후해 나돌던 여권 핵심부의 「권고문 불출마 권유설」이 사실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권고문의 불출마는 특히 정치 이력상 그와 비슷한 위치에 있는 다른 당 중진들의 거취에 큰 영향을 미칠 게 확실하다. 구체적으로 당의 고위직을 지낸 수도권의 일부 3선 이상 의원들과 16대 원내 복귀를 노리는 구국민회의 부총재급 원외 인사들, 여론조사에서 유권자들의 부정적 평가가 확인된 호남 중진의원 등에겐 권고문이 「물귀신」으로 비칠 수도 있다. 『조만간 경쟁력없는 중진들을 대상으로 여권 핵심부의 불출마 권유가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힘을 얻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일부에선 『핵심부가 권고문 카드로 당선이 위험한 중진들에게 무언의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다』고 보고 있기도 하다.
호남 물갈이의 주요 포인트 중 하나인 동교동계 의원들의 처리 문제와 이번 불출마를 연관시키는 시각도 있다. 『권고문이 자진해 물러난 이상 동교동계도 물갈이의 사정권에서 벗어나긴 어렵게 됐다』는 얘기다. 여론조사에서 좋지 않은 흐름을 보여준 몇몇 동교동 직·방계 의원들의 재공천 여부가 주목된다.
이와 함께 시민단체의 공천반대 명단에 포함된 민주당 소속 원내·외 인사들의 처지도 답답하게 됐다. 권고문이 성명서에서 『나에 대한 시민단체의 공천반대 이유를 수긍하지 않지만 대통령과 나라 장래를 위해 희생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시민단체 의견을 존중하겠다』던 핵심부의 얘기가 결코 허언(虛言)이 아니었음이 입증된 셈이다.
신효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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