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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사장들 새로운 컬렉터로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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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사장들 새로운 컬렉터로 뜬다

입력
2000.02.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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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고가의 미술품을 살 수 있는 재력가론 보이지 않았어요. 전시장을 한번 휙 둘러보더니, 이중섭 그림은 없느냐고 묻더군요. 당장은 없다고 하니 이번엔 박수근 그림을 찾더군요. 억대가 넘는 비싼 그림만 원했어요. 적당한 작품이 없다고 하니 명함을 주며 연락달라고 하더군요. 벤처기업 사장이었습니다』인사동 터줏대감으로 불리는 N화랑 사장 N씨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요즘 화랑가에선 컬렉터들이 변하고 있음을 실감한다. 3-4년 전만 해도 인사동이나 사간동, 그리고 강남의 신사동이나 청담동 화랑의 주요 고객은 50-60대 재벌이나 자산가들이었다. 그러나 작품구매 고객들의 연령이 점점 낮아지면서 30대 후반-40대 초반의 젊은 층이 미술 시장의 새로운 컬렉터로 떠오르고 있다. 중소기업 사장이나 벤처기업 대표, 외국기업의 고액 연봉자들이다.

이들 젊은 컬렉터들은 두 부류로 나뉜다. 갑자기 많이 번 돈을 단순히 과시하고 싶은 졸부형 젊은이들은 이중섭, 박수근 등 귀한 작가의 그림만을 찾는다. 단순히 비싸다는 점 외에, 작품의 희소성 때문에 이들 그림값만은 IMF 위기에도 끄떡 없었다는 점이 이들에게는 매력있는 투자 대상이다.

또다른 부류는 진정으로 미술을 애호하는 층이다. K화랑 L사장은 『이들은 그림을 재산증식 수단으로 여기지 않는다. 집안의 가구처럼 생각할 뿐』이라고 말했다. 경제적인 취미활동이다. 이들은 혼자 화랑을 찾던 강남 아줌마들과 달리 부부가 함께 와 의논하며 작품을 고른다. 이들 젊은 컬렉터에는 외국기업의 젊은 외국인들도 포함된다.

이들에게 인기있는 작가는 유명 작고 작가들보다는 자신들의 취향에 맞는 생존 작가들이다. 장승택 이인현 조덕현 문범 전광영 김창영 김성호 등 젊은 작가들의 그림이 요즘 「뜨는」 그림들이다. 아파트나 빌라의 구조가 점점 미니멀화하면서 집안 분위기에 어울리는 깔끔하고 단순한 작품들이 잘 팔리고 있다. 이들 그림의 가격은 작고 작가들의 그림값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이 낮은 가격이다. 호당 가격은 이런 그림에서 그림값을 산정하는 기준이 아니다. 100-200만원에서 비싸야 1,000만원을 넘지않는 작품들이기 때문이다.

기존 고객들이 다시 돌아오지 않고 있다는 것도 요즘 화랑가의 특징이다. P화랑 P사장은 『1991년 최고가를 형성했던 미술품 시장에 뛰어들었던 고객들일수록 가슴의 멍은 심하다. 그들은 추락한 채 여전히 회복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현 시세에 실망한 나머지 그림을 사거나 재판매할 의욕을 아예 잃어버린 것 같다』 고 말했다.

젊은 컬렉터들이 강남보다는 강북의 화랑을 선호하고 있는 것도 특징이다. 1999년 말에서 올 1월 사이 강북의 메이저화랑이 벌였던 기획전의 경우 전시작품의 70-80%가 소화됐다. 실물경기는 좋아지고, 벤처기업은 강남으로 몰리고 있지만, 강남의 화랑가가 경기의 흐름을 타려면 조금 더 기다려야 할 것이라는 진단이다. 「그림과 그림값」의 저자인 김재준 국민대 교수는 『컬렉팅을 재테크 수단으로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젊은 층이 창출한 그림 시장은 건전하다고 할 수 있다』면서 『하지만 이들 젊은 컬렉터들의 안목이 과연 기존 컬렉터 만큼 높은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송영주기자

yjs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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