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세계적인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83)은 20세기를 최상과 최악을 나란히 겪은 「극단의 세기」라고 규정했다. 20세기가 저물고 새 천년의 문턱을 넘은 지금, 그의 역사적 통찰력은 미래를 어떻게 전망하고 있을까. 지난해 말, 홉스봄은 이탈리아 신문기자 안토니오 폴리토(「레 푸블리카」 런던 특파원)와 21세기를 전망하는 대담을 나눴다.폴리토는 홉스봄에게 많은 질문을 던졌다. 자본이 국경을 넘어 세계를 지배하는 시대에 국가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미국의 지배력은 계속될 것인가. 새로운 초강대국이 탄생할 수 있을까. 세계화의 방향은 어디로 흘러갈 것인가. 소련의 몰락 후 좌파에게 무엇이 남았는가….
홉스봄은 점쟁이나 예언자가 아닌 역사학자로서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반드시 과거의 경험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20세기의 역사를 돌아보고 거기에 비추어 조심스레 미래를 내다본다. 이 책은 나침반처럼 분명하게 미래의 어떤 지점을 가리키지는 않지만, 우리가 지금 딛고 서 있는 곳의 지형을 읽게 한다. 홉스봄은 오늘의 세계를 비판하면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묻고 있다.
21세기도 미국의 세기가 될 것인가. 그는 미국의 경제력과 문화적 헤게모니는 지속되겠지만 줄어들 것이라고 진단한다. 「세계가 하나의 나라에 지배되기에는 너무 넓어지고 복잡해질 것이 분명하므로, 세계 경찰 노릇을 하려는 미국의 야심은 위험한 도박」이라고 비판한다.
또 「50년 후의 역사학자가 우리 시대를 뒤돌아 본다면, 20세기의 마지막 순간을 소련의 몰락과 자유 시장 근본주의의 파산이라는 두 가지로 요약할 것」이라며 「지금 유행하는 자유시장 이데올로기는 1997~1998년 세계 경제위기를 전환점으로 사라질 것」이라고 예견한다. 좌파의 운명에 대해 그는 「좌파는 아직도 존재하며, 시대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지더라도 좌파와 우파의 운명적 대립은 계속될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홉스봄 자신은 청년 시절 실천적 공산주의자였고 지금도 20세기의 마지막 마르크시스트, 좌파의 대부로 불린다. 공산주의는 실패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선택에 후회하지 않는다며 이렇게 말한다.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이상을 품지 않는다면, 우리는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입니다. 인류를 위한 유일한 이상이 물질적 풍요를 통한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라면, 인류는 언젠가 멸종하고 말 것입니다』
긴 대담을 마치며 그는 「내 손자가 어디에 살든지, 그의 열망과 소망에 부합되는 사회를 발견하기 바란다. 그것은 21세기를 살아갈 모두가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라고 강조한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인간의 책임을 거듭 일깨우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세기와의 대화
에릭 홉스봄·안토니오 폴리토 지음
강주헌 옮김
끌리오 발행. 8,8000원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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