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정기국회에서 「제주 4·3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통과된 것은 퍽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동일선 상에서 일어난 여순사건이 대상에서 제외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두 사건은 동기나 피해 면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국가공권력에 의해 많은 사람들이 억울하게 희생됐다는 점에서는 궤를 같이한다. 더욱이 여순사건은 제주사건을 진압하기 위해서 출동한 군부대가 반란을 일으켰다는 점에서 떼어 놓을 수 없는 연관관계를 갖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두 지역 주민들은 여태껏 진상규명과 희생자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애써온 것이다. 제주사건만 특별법이 제정되고 여순사건은 소외돼 버린 것은 형평의 원칙에 크게 어긋나는 일이다.
당시 제주사건은 3만명 이상의 인명이 희생된 큰 사건이기는 하지만 파장은 단지 제주 일원에 머물렀다. 그러나 여순사건은 신생 대한민국을 뒤흔든 큰 사건이었다. 그들이 지리산으로 들어가 게릴라전을 벌이는 바람에 소탕작전이 5년이나 계속됐고 그동안 영·호남 일원의 산악지대는 낮에는 대한민국, 밤에는 인민공화국 세상으로 바뀌었으니 파장 면에서 제주사건과는 비교할 수 없다.
지금까지 과거 정권은 이런 종류의 사건에 대해 근본적인 해결책을 세우지 않고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쉬쉬하면서 특정지역만을 대상으로 한 특별법을 만드는 일시적인 무마책에만 급급했다.
몇년 전 산청 함양지역에서 문제가 제기됐을 때도 그랬고 이번 제주사건 때도 역시 그랬다. 국가시책이란 것은 투명하고 공정한 가운데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같은 사건을 두고 어느 곳에는 적용시키고 어느 곳에는 모른척 한다면 이것이 어디 말이 되는가.
국민의 정부에 대해 당부하고 싶은 것은 이 기회에 전국을 대상으로 여순사건 때나 한국전쟁 때 진압군경에 의해 억울하게 희생된 모든 피해자들에게 일괄적으로 적용시킬 수 있는 특별법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다. 물론 예산도 들겠지만 보상금은 일시불이 아닌 연금제로 해결하면 크게 부담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하루바삐 어두웠던 과거를 청산하고 전 국민이 힘을 한 곳에 모아 새천년을 열어가야 한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바로 역사 바로세우기이다.
/김계유·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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