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귀성객 공통의 화제는 꽉 막힌 고속도로에서 몇시간을 고생했느냐는 것과 조상 묘소관리 문제였을 것이다. 명절에 고향가는 일이 갈수록 어려워지니 온 김에 성묘를 해두자고 선산을 찾았지만, 고향가고 선산찾는 번거로움에서 벗어나고 싶은 생각에 무슨 수를 내야겠다고 입을 모으는 사람이 많았다.최근 서울의 회장률이 급격히 늘어난 데는 이런 의식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서울시 시설관리공단 조사에 따르면 올해 1월중 화장률이 55%에 이르렀다. 98년 이전에는 오래도록 30%대에 머물다 99년 43%로 치솟았고 올해 들어 50%를 넘어선 것은 고 최종현 SK 그룹 회장의 화장유언도 한 계기가 된 듯하다.
재벌의 화장유언 실천이 화제가 되면서 장묘제도 개선 시민운동이 힘을 얻은데다, 지도층의 참여와 일반인의 의식변화가 가세하기 시작한 것이다. IMF체제 아래 혹독한 시련을 겪으면서, 비용과 품이 많이 드는 매장보다 싸고 간편한 장례를 원하는 계층이 늘어난 것도 원인의 하나로 꼽을 수 있다.
아직 전국적으로는 화장률이 30%에 못미치지만 출산율 저하는 필연적으로 화장률을 끌어올려 우리의 장묘문화를 바꾸게 될 것이다. 전문가들은 부부 한쌍의 출산자녀 수를 나타내는 합동출산율이 1.5 이하로 떨어지면 외동딸 가구가 크게 늘어나고, 하나 뿐인 아들에게 묘지관리 부담을 주기 꺼리는 부모가 많아져 자연스레 화장문화가 정착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문제는 이런 의식의 변화를 제도와 인습이 얼마나 받아들이냐는 것이다. 오랜 논란을 거듭하던 장묘법이 지난해 연말 개정돼 올해 연말부터는 길어도 60년 이상 분묘를 유지할 수 없고, 묘지면적도 크게 줄어들게 된다.
그러나 화장장이나 납골시설 장례식장 등이 아직 제자리를 맴돌고 있어 화장을 원하는 사람들의 불편이 크다. 인구 2,000만명이 넘는 서울과 수도권에 화장장이 겨우 넷이다. 위생적인 시설과 정중한 서비스는 고사하고, 처리능력이 달려 몇시간씩 대기하거나 다른 시설을 찾아나서는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화장과 납골시설이 부족한 것은 관련법의 규제와 화장시설을 혐오하는 국민의식 때문이다. 건축법 도시계획법 등이 도심지와 주택가에 화장장이나 납골당은 물론, 장례식장까지 들어서지 못하도록 규제하는 것이다.
「화장장」 「납골당」 같은 말에서 오는 부정적 인상을 씻어낼 새로운 어휘를 창출하고, 위생적이고 쾌적한 환경을 갖춘 화장시설 모델을 개발해 화장을 거부감 없는 생활의 한 부분으로 수용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