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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포커스] 한약사시험 파문…끝은 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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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포커스] 한약사시험 파문…끝은 어디에

입력
2000.02.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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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오전 정부 과천청사 보건복지부 장관 집무실. 때아닌 고성이 터져나오고 있었다. 장관이 직원을 질타하는 소리가 아니다. 전날 서울고에서 치러진 제50회 약사국가시험을 전면거부한 1995, 1996학번 약대생 학부모 10여명이 몰려와 차흥봉(車興奉)장관을 거세게 몰아부치고 있었다.『응시자격 기준을 백지화 해 주세요, 다 큰 자식을 위해 이렇게 나서야 하는 부모의 심정을 아십니까.』(학부모)

『번복할 수 없습니다. 정부가 잘못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장관)

입씨름은 1시간 가까이 계속됐지만 결과는 제자리. 감정의 골만 깊어졌을 뿐이다. 집무실을 나서던 한 50대 학부모는 이런 말을 던졌다.

『딸이 반드시 한약사시험을 보게 할 겁니다』

바로 전날 치러진 약사국시. 응시률이 사상 최악인 41.3%를 기록했다. 응시대상 약대생중 59%가 한약사시험 응시자격 기준을 문제삼아 무더기 결시했기 때문이다. 응시자들은 재수생과 편입생, 해외약사면허증 소지자 등이 대부분. 약대생들은 시험 대신 침묵시위를 택했다. 시험이 치러지는 4시간여동안 서울고 정문앞에서 시위를 벌였던 전국약대비상대책위원회 관계자의 말.

『유급요? 뭐가 두럽습니까. 한약사시험 응시자격 요건을 갖춰 내년엔 반드시 재도전 할 겁니다. 시위의 목적은 정부가 약대생들을 더이상 우롱하지 못하도록 의지를 보이자는 거지요』

「한약학과생 헌법소원, 전례가 없는 대학 졸업예정자 학부모들의 장관 면담, 약시(藥試) 집단 포기, 약대생 헌법소원…」.

한약사시험 파문의 종착역이 도대체 보이지 않는다. 한약사시험(20일)을 불과 13일 남겨뒀지만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정부와 약대생측이 각각 제 갈길만을 가는 형국이다.

올해 처음 치러질 한약사 시험은 93년부터 97년까지 4년여동안 약사의 한약 조제권 문제을 놓고 지리하게 계속된 한·약분쟁의 산물이다. 정부는 이 분쟁의 해결을 위해 94년 약사법 개정때 한약사시험 제도를 처음 도입했다. 응시자격과 관련, 법정 20개 과목만 확정하고 나머지 이수과목은 「소관대학의 자율」에 맡긴다고 했다.

하지만 이 조치는 오래가지 못했다. 정부는 96년 경희대 등 3개대에 한약학과가 설치되자, 97년 2월 약사법을 다시 개정해 한약사 시험 응시자격 요건을 한약학과 졸업생으로 한정했다. 그러면서 경과규정을 둬 한약학과 전공자 외에도 96년 이전에 입학한 약대생에게도 한약사시험 응시자격을 주었다. 물론 법정 20개 과목을 포함, 한약관련과목 95학점을 이수해야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이후 2년여 동안을 정부는 허송세월했다. 이 기간동안 정부는 한약사시험 응시에 필요한 관련과목을 확정하고 잡음을 없앨 구체적인 응시자격 기준을 마련해야 했지만 뒷짐만 지고 있었다. 뒤늦게 지난해 여름 한약학과와 약대교수들로 「한약관련과목 심의위원회」를 구성했지만, 교과과정이 다른 약대 교수사이의 이해 관계과 조정되지 않아 약대교수들이 이탈하는 바람에 무산됐다.

결국 정부가 참다못해 지난해 11월17일 단독으로 3개대 한약학과의 71개 전공과목을 모두 한약관련 과목으로 인정하는 내용의 한약사시험 응시자격 기준을 확정했다. 이해 당사자인 95, 96학번 약대생들이 가만 있을리 없었다.

응시원서접수(1999년 11월29일~12월3일)를 불과 보름도 안남긴 시점에서 응시자격 기준을 발표한데다 내용 또한 약대생 응시를 사실상 봉쇄하는 것이어서 엄청난 소용돌이를 몰고왔다.

약대생들이 반발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94년 최초 한약사시험 응시자격 기준이 정한 대로 20개 필수과목을 이수했고, 기타 관련 과목도 대학별 결정에 따라 학점을 땄는데 느닷없이 새 기준을 마련해 응시자격을 원천적으로 막았다는 주장이다.

한의계도 가만 있을리 없었다. 『한약사제도가 한약의 관리 및 취급을 한약사에게 전담시키자는 것이지, 약사가 한약사 면허를 따도록 돕는게 아니다』라는 게 이들의 논리. 『한약학과생의 약사시험 응시는 막으면서 약대는 관련과목만 이수하면 한약사시험에 응시할 수 있도록 한 자체가 모순』이라고 말한다. 한의계의 경우 한약학과생 2명이 비(非)한약과생 한약사시험 응시가 한약학 전공자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행위하며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헌법소원이 각하돼 반발이 잠잠해진 상태지만 약대생들은 그 수위를 높여가고있다.

약시를 거부한데 이어 유급불사, 단식 및 거리투쟁을 중단하지 않고 있고, 1~3학년 약대생들도 「선배」들과 합류한지 오래됐다.

이같은 파문에 대한 정부의 생각은 한마디로 「입장불변」이다.

차장관은 최근 기자들과 만나 『이미 결정한 한약사시험 응시자격 기준을 바꿀 용의가 없을뿐더러, 바꿔서도 안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여운은 남겼다. 정부 약학계 한약학계 한의계 등이 참여하는 한약사제도 발전협의체를 구성, 한약사제 발전방안을 논의할 용의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선언적 의미가 크다. 발전협의체의 성격이 현행 한약사제를 재검토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힐 경우 헌법소원 각하로 「시한폭탄」이나 마찬가지인 한약계와 한의계가 집단 반발, 사태를 오히려 확산시킬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적어도 현재로서는 한약사시험 파문을 해결할 방법은 보이지 않는듯 하다. 결국 이번 사태의 교훈은 늑장행정이 이해집단간 갈등을 증폭시키고 상상을 초월하는 후유증만 남긴다는 사실이다. 성균관대 약대의 한 교수는 『정부가 97년 약사법 개정 때 서둘러 한약 관련과목을 선정했더라면 지금과 같은 상황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김진각기자

kimjg@hk.co.kr

■[월요포커스] 약대생 "유급등 각오"

한약사시험 응시가 불가능하게 된 약대생들은 「응시자격 기준 철폐」요구에서 한발짝도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수업 및 시험거부에 따른 대량 유급사태에 직면하고, 약사시험도 포기한 마당에 두려울 게 없다는 태세다.

전국약대비상대책위원회 이승용(27·조선대 약대4)위원장은 『보건복지부가 약대생들을 우롱했다』고 말했다. 복지부가 한약사제 도입 당시 정한 기준에 의거, 20개 필수과목을 이수했으며 기타과목도 「학과목에 대한 세부결정은 소관대학에서 결정할 일」이라는 회신에 따라 대학별로 시험에 대비해왔는데, 졸업을 목전에 둔 시점에 갑자기 새 기준을 만들어 약대생 응시를 박탈했다는 주장이다.

약대생들의 향후 투쟁일정도 변함이 없다. 정부가 한약사제 도입 당시의 약속을 깨뜨리는 바람에 이번 파문이 초래됐다는 점을 집중 부각시키는 동시에 유급을 해서라도 한약사 시험을 보겠다는 각오다.

약대교수들의 분위기도 학생들과 비슷하다. 전국 20개 약대학장 모임인 한국약학대협의회 권순경(權順慶·덕성여대교수)회장은 『한약관련과목을 대학 자율에 맡긴다고 해놓고 아무런 말이 없다가 5년만에 추가인정과목을 슬그머니 짚어넣는 탈법적 행정으로 졸업을 앞둔 약대생들이 희생당하게 됐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충북대 약대 이경순(李京淳)교수는 『경과조치로 약대생들에게 응시자격을 주면서 이미 졸업했거나 졸업이 임박한 상황에서 이수과목을 발표하면 약대생들이 어떻게 95학점을 채우느냐』고 반문했다.

김진각기자

kimjg@hk.co.kr

■[월요포커스] 한의계 "긁어 부스럼 낼 필요있나"

한의계의 반발도 약대생 못지 않다. 하지만 한의계측은 지난해말 정부가 약대생의 응시원서를 무더기 반려 조치하고, 지난달 하순 헌법재판소 헌법소원 이 각하되자 숨을 고르고 있다.

어차피 대다수 약대생들이 한약사시험을 볼 수 없게 됐고, 소정의 과목을 이수한 비(非)한약학과 출신의 한약사시험 응시가 한약학과 전공자들의 기본권을 침해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헌재결정이 난 마당에 공연히 「긁어 부스럼 낼」 이유는 없다는 인식에서다.

그러나 한의계는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다. 올해 2,000여명에 육박하는 약대생들의 한약사 시장 진출을 저지하는데는 일단 성공했지만, 응시기준이 바뀔 경우 상황은 언제든지 돌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배경에는 한의계의 확고한 생각이 자리잡고 있다. 7월부터 시행할 의약(醫藥)분업에 이어 한의약(韓醫藥)분업도 어차피 실시해야하는 상황이 도래할 게 분명하다고 예상할 때, 한약사는 약대출신이 아닌 한약학과 출신이 중심이 돼야 주도권을 쥘 수 있다는 것이다. 병·의원들이 의약분업의 중추세력로 자리잡은 것이 한약분쟁의 반면교사(反面敎師)가 되고 있다는 생각이다.

/김진각기자 kimjg@hk.co.kr

■[월요포커스] 이용흥 보건복지부 한방정책관

보건복지부 이용흥(李鎔興·사진)한방정책관은 6일 『대다수 1995, 1996학번 약대생들이 올해 한약사시험에 응시하지 못하게 된 것은 가슴 아프지만, 정부가 정한 응시요건을 반드시 충족해야 응시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약대생들의 반발과 상관없이 올 한약사시험은 「원칙대로」 치르고, 응시를 원한다면 관련과목을 이수하라는 설명이다.

_금년 한약사시험에 약대생 원서를 무더기 반려한 이유는 무엇인가.

『한약학과의 71개 전공과목 모두를 5개 분야별 한약관련 과목으로 추가 인정하였으나 약대생들은 위 요건을 채우지 못했다』

_정부가 지난해 11월 새로 정한 「한약관련 과목의 범위 및 이수인정기준」에 대해 약대생들은 자신들의 응시자격을 제한한 조치라고 주장한다.

『71개 추가인정과목은 한약사시험에 필요한 필수이수과목이 아니며, 학점이 부족할 경우 이수학점이 가산되도록 한 것이다. 응시자격을 제한한 것은 아니다』

_한약사시험 응시자격 기준을 너무 늦게 마련하는 바람에 정부가 사태를 오히려 키웠다는 지적이 있는데.

『96년 경희대 등 한약학과가 생길 때 전공과목 등 커리큘럼이 정해지지 않아 시험과목을 미리 정할 수 없었다』

_약대생 문제의 해결책은 있나.

『지금으로서는 뾰족한 수가 없다. 한약사가 되려는 약대생은 무조건 정부가 정한 조건을 이수하는 길 밖에는』

김진각기자 kimj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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