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움」낯설면서도 소리내어 읽어보면 그 의미가 저절로 와닿을 것 같은 이 단어는 국어사전에 나오지 않는 황동규(62) 시인의 조어(造語)이다. 「외로움을 통한 혼자 있음의 환희」 를 의미하는 말이다. 황씨의 11번째 시집 「버클리풍의 사랑 노래」(문학과지성사 발행)는 바로 이 홀로움을 노래한 시집이다.
1997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3년 동안에 씌어진 이번 시집의 시들은 황씨가 길 위에서 쓴 것들이 대부분이다. 미국 버클리대학에 반년간 교환교수로 가 있으면서 쓴 표제작을 포함한 「버클리 시편」 연작들, 죽은 친구의 고향인 진도, 반계 유형원이 살던 부안반도, 속초 대포항 등지를 방문하고 쓴 시들이다.
「편지」 의 소년이 벌써 나이 환갑이 넘어, 그것도 먼 객지에서 뼈저린 외로움을 느끼며 쓴 시들이 「버클리 시편」 연작이다. 「창밖엔 캘리포니아 와서 첫 비 내리는 날/이중창에 묻는 빗방울이/멈춰진 맥박들 같다」(「첫 비 내리는 저녁」부분). 그러나 그는 그 노년의 외로움을 「홀로움」 으로 승화시킨다.
「슈베르트의 세상 뜨기 직전 음악/현악 오중주를 온 몸으로 듣고 있으면/죽음과 맑음이 같은 뿌리에서 태어났음을 깨닫는다/실뿌리까지 같다」(「1997년 12월24일의 홀로움」부분). 죽음과 맑음에 대한 연상은 이번 시집을 관류한다.
「부음(訃音)이 겹으로 몰려올 때/잠들 때쯤 죽은 자들의 삶이 떠오르고/그들이 좀 무례하게 앞서 갔구나 싶어지면/관광객도 나대지 않는 서산 가로림 만(灣)쯤에 가서」. 그는 「소유언시(小遺言詩)」를 썼다. 이 시에서 그는 『열반에 머문다는 것은 열반에 속박되는 것이다』 는 원효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그 깨달음을 「왜 인간은 살 만큼 살다 말려 않는가?/생선들 누웠던 평상 위/흥건한 소리마당 같은 비릿함,/그 냄새가 바로 우리가 처음 삶에,/삶에 저도 모르게 빠져든 자리!/그 냄새 속에 온몸 삭듯 젖어/육십 년 익힌 삶의 뽄새들을 모두 잊어버린다」 라고 시인은 표현한다.
『인간의 내부는 성(聖)과 속(俗)이 힘겹게 만나는 장소이고 표면은 성과 속이 따로 노는 장소가 아니겠는가. 따로 노는 게 편하다면, 편하지 않게 살고 싶다』 고 황씨는 말했다. 그의 시들은 이 편하고 싶지 않음의 표현들이다.
하종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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