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부터 실시되는 예금보호 한도 축소를 앞두고 시중 금융기관간 자금이동현상이 가시화하고 있는 가운데 시행여부를 둘러싸고 정부와 일부 금융기관간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새 예금자보호법 실시로 대규모 자금이탈을 지켜봐야 하는 중소 금융기관으로서는 시행연기에 사활이 걸려 있다는 다급한 입장인 반면 정부는 금융시장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 제도 시행을 강행할 수밖에 없다는 강경한 태도다.금융기관의 빈익빈부익부 새 예금자보호법은 예금을 맡긴 금융기관이 파산할 경우 원금과 이자를 합쳐 2,000만원까지만 보호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2,000만원 이상의 고액을 맡길 경우 나머지 돈은 모두 날릴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예금자들은 금리조건이나 부대서비스보다 금융기관의 부실여부부터 따져봐야 한다. 당연히 돈이 안전한 투자처를 향해 자리를 옮길 수밖에 없고 이는 금융기관의 빈익빈부익부현상을 심화시키고 금융구조조정을 촉발시키는 도화선이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실제로 올들어 우량 시중은행에만 돈이 몰릴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들어 우량은행을 중심으로 수신고가 급증하면서 지난달 29일까지 시중은행 예금은 8조7,355억원이 늘어났다. 지난해 같은 기간 1조3,708억원에 비해 7배 가까운 증가규모다. 이에 비해 금고는 지난 한해 동안 전체 수신고의 16%인 4조911억원이 빠져나갔다.
둑이 무너진다 시행연기나 한도확대를 주장하는 쪽은 금고와 종금 등 제2금융권과 일부 은행. 이들은 예금자보호한도의 하향조정으로 자금이탈이 가속화할 경우 존망의 기로에 설 수밖에 없다는 위기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특히 금고와 종금 등 중소금융기관들은 새로운 예금자보호법이 은행을 위한 제도로 중소 금융기관의 실정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은행과 달리 우량·부실의 구별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제2금융권에서는 유언비어 등 작은 충격으로 뱅크런(예금인출사태)이 생길 경우 재무구조가 튼튼한 우량금융기관마저 동반 몰락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새 예금자보호법 실시를 놓고 은행간 이해관계도 크게 엇갈리고 있다. 우량은행들은 느긋한 입장인 반면 수익구조가 열악한 일부 시중은행과 지방은행들은 초조한 입장이다. 이와 관련, 일부 시중은행은 예금자보호한도의 축소시기를 1년 늦춰줄 것을 재정경제부에 건의하는 등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갈길은 간다 정부의 입장은 확고하다. 현재의 예금 전액보호제도는 1997년 12월 외환위기 아래에서 금융제도의 붕괴를 막기 위해 취해진 한시적인 제도다. 따라서 금융구조조정이 상당부분 진행되고 금융시장이 안정을 되찾아가고 있는 시점에서 더이상 예금전액보호가 필요없다는 것이 정부의 판단이다.
이와 함께 정부는 예금전액 보장조치가 금융기관과 예금자의 도덕적 해이를 조장하고 대외신뢰도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점을 중시하고 있다. 예금자보호법을 연장하고 보호한도를 높이면 시장중심의 구조조정이 늦춰져 그만큼 금융구조조정에 투입될 국민의 공적자금 부담만 늘어나게 된다는 논리다.
김병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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