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3세대가 함께 얽혀 살아가는 대가족을 다룬 영화만큼 설날에 적합한 영화도 없을 듯 싶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고 이야깃거리가 끊이질 않으며, 시대와 가치관 변화에 따라 달라진 가족의 초상을 조명한다는 점에서도 영화 소재로는 이상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레고리 나바 감독의 「마이 패밀리(Mir Familia)」
(고가·우일)는 미 LA 동부에 정착한 멕시코 이민 가정의 3대에 걸친 가계사를 연대기 순으로 차분하게 그린다. 이민 가정 이야기는 의식주 해결을 위해 부자 나라를 찾은 1세대의 순종적인 근면 정신이 2, 3대를 거치면서 정체성에 대한 혼란과 반항, 보다 큰 부를 탐하는 데서 오는 범죄의 유혹, 타민족과의 사랑과 결혼으로 인한 갈등, 대가족의 공동체 정신 붕괴, 무엇보다 민족의 순수성 상실로 자리 바꿈하게 된다.
「마이 패밀리」도 이같은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으며, 시대 변화에 따른 2, 3 세대의 각박한 변모에도 불구하고, 땅과 가족을 중시하는 1세대의 고집은 고향이자 영원한 안식처로 남아 후대의 영혼을 위로한다고 속삭인다. 제니퍼 로페즈, 이사이 모랄레스 등 남미 출신 배우들이 총출동했다.
■ 베리 레빈슨의 「아발론(Avalon)」
(고가·콜럼비아)은 감독의 자전적인 가족 이야기다. 1914년 7월 14일, 독립기념일 불꽃놀이를 황홀하게 바라보며 볼티모어에 첫 발을 디딘 할아버지는 도배공이 되어 가족을 부양한다. 2차대전과 TV 보급 등의 시대 변화를 읽은 아들은 가전제품 도매상으로 큰 돈을 벌 계획을 세우고, 며느리는 분가하여 오붓하게 살자고 한다. 고생스러웠던 이민 초기 이야기를 들려주는 할아버지를 지겨워하는 손자들. 양로원에 들어간 할아버지를 장손이 자신의 아들과 함께 방문하여 뿌리를 확인한다는 해피 엔딩이지만, 조그맣게 오그라든 할아버지의 모습은 가슴을 시리게 한다. 아민 뮬러 스탈, 애이던 퀸 주연.
■ 조지 틸만 주니어의 「쏘울 푸드(Soul Food)」
(연불·우일)는 미국 현대 중산층 흑인 가정의 지지고 볶는 일상사를 가족 식사 모임을 중심으로 전달한다. 홀로 집안을 일으킨 억척스럽고 통이 큰 할머니는 세 딸과 사위, 손자 손녀를 일요일 저녁마다 불러모아 손수 만든 음식을 먹이는 게 낙이다. 가족의 구심점이자 해결사였던 할머니의 병환으로 혼이 담긴 음식을 먹을 수 없게된 가족들 사이에는 불화가 끊이질 않는다. 영특한 손자의 지혜와 고운 마음씨가 40년을 이어온 저녁 식사 모임의 전통을 되살린다는 뿌듯한 결말. 바네사 윌리암스, 비비카 폭스, 니아 롱이 세 자매로 분했다.
■ 다니엘 패트리 감독의 「로켓 지브랄타(Rocket Gibraltar)」
(연가·콜럼비아)는 77세 생일을 맞은 할아버지를 위해 아름다운 바닷가 저택에 모인 네 자녀와 8명의 손주들 이야기다. 재즈와 바다를 사랑하는 시인이며 작가인 할아버지는 심장병으로 고통받고 있었다. 이를 알지 못하는 자식들은 직장, 가정 일로 할아버지에게 마음의 짐을 지우지만, 의사의 이야기를 엿들은 어린 손주들은 마지막이 될지 모를 할아버지의 생일을 위해 낡은 배를 고쳐 선물하기로 한다. 그 배의 이름은 로켓 지브랄타. 배를 타보기도 전에 할아버지는 조용히 세상을 떠나고, 아이들은 바이킹식 장례를 부러워했던 할아버지를 위해 로켓 지브랄타호를 띄운다. 중후한 버트 랑카스터와 귀여운 맥컬리 컬킨이 할아버지와 손자 역을 맡았다.
■ 제임스 아이보리 감독의 「브리지 부부(Mr. and Mrs. Bridge)」
(고가·영성)는 1930년대 말 캔사스시의 상류 가정사를 우아하고 유머러스하게 그리고 있다. 명망 있는 변호사 브리지씨는 한여름에도 조끼와 넥타이를 갖춘 정장 차림을 고집하는 고지식한 인물. 그의 아내 인디아는 남편 의견을 자신의 의견이라 여기며 세 자녀를 키우며 조용히 살았다. 성장한 자녀들은 부모가 반대하는 결혼과 직업을 고집하며 독립을 외치고, 어머니는 너무나 달라진 시대와 아이들 때문에 혼란에 빠진다. 실제 부부인 폴 뉴먼과 조앤 우드워드가 브리지 부부로 출연하고 있다.
■ 허안화 감독의 「여인 사십(女人, 四十)」
(고가·영성)은 동양권 영화로 공감대가 더욱 크다. 자상했던 시어머니의 급작스런 죽음으로 치매 증상을 보이는 시아버지를 모시게 된 직장을 가진 손 여사. 고지식한 남편은 갈팡질팡 할 뿐 도움이 되질 않고, 동서와 시누이는 저살기 바쁘다며 엄살이고, 대학생 아들은 갖가지 소동을 일으키는 할아버지를 보며 부모 모실 일을 지레 걱정한다. 교굉과 소방방이 따뜻한 마음의 교류를 나누는 엄한 시아버지와 지혜로운 며느리로 실감나는 연기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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