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방학도 끝나간다. 아이들이 방학을 어떻게 보내는지 궁금하지만 그중에서도 지영이와 동생 은지가 특히 보고 싶다.2학년인 지영이는 이제 겨우 6살인 동생 은지와 함께 학교에 나왔다. 엄마가 없는데다 아빠도 일때문에 며칠씩 집을 비우기 때문이다. 은지는 그렇게 학교에 나와 개구장이 짓도 하면서 수업 분위기를 엉망으로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한번은 『추운데 아침에 오지말고 낮12시 땡 하면 급식실로 바로 와 점심만 먹어라』고 했더니 복도 끝에서 얼굴만 내밀고 교실을 응시했다. 그 모습에서 까닭모를 울분이 차올라 지영이에게 말을 시켜보았다.
『엄마는 어디 가셨어』 『술병 고친다고 외가에 가셨어요』 『언제』 『아주 어릴때요』 『아빠는 어디 가셨어』 『돈벌러 대구요』 『언제 오셔』 『열세밤 자면 오신댔어요』 『지금 몇밤 잤는데』 『네밤이요』
한번은 며칠째 지영이가 오지 않아 집을 찾아 갔다. 미로같은 골목을 헤맨 뒤 집을 찾았는데 자매는 없었다. 대신 이불과 라면을 끌여먹은 상이 그대로 널부러져 있었다. 대강 방을 정리하고 밥하고 설거지까지 마쳤는데도 아이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다시는 화내지 않을게. 내일은 동생 데리고 학교에 꼭 와야한다」는 쪽지를 써놓고 나왔다. 지영이는 3일만에야 혼자 학교에 왔다.
『그동안 왜 안나왔니』 『늦잠 자느라고요』 『TV를 늦게까지 보았구나』『…』『아빠는 아직 안 왔니』 『네…』 『은지 데리고 오너라. 우리 집으로 가게』 『안돼요. 울 아빠 이제 오실때 됐어요』
요금을 못내 전화도 안되는 집에서 6살, 8살짜리 자매는 무서움때문에 끌어안고 잔단다. 애국가 나올때까지 TV를 봐도, 밥하기 싫어 빵을 먹어도 뭐랄 사람없는 이들에게 아빠는 새옷 한벌씩을 사들고 10여일만에 나타났다.
나는 아빠에게 『아이들만 두고 또 가면 고발해 버릴 거예요』했더니 『그럼 굶어 죽어요』란다. 내 목소리에 고개숙인 아빠를 보고 자매는 『선생님, 아빠가 내복과 장남감 과자 많이 사왔어요. 우린 괜찮아요』라고 한다. 사정은 헤아리지 않은채 따지기만 한 것 같아 멋적어졌다.
그 뒤로는 내가 아무리 물어봐도 자매는 『울 아빠 저녁마다 꼭 들어와요』라고 말한다. 지영이 아빠는 며칠씩 집을 비운 뒤 학교로 아이들을 데리러와 내게 『죄송합니다』며 머릴 긁적인다. 하지만 반색을 하며 두손을 벌린 채 돌진하는 자매에겐 아빠가 이 세상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존재이리라. 어느덧 은지와 아빠도 우리 반이 돼버렸다.
방학이 끝나고 다시 볼 아이들에게 혼자서 이렇게 말한다. 『지영아, 은지야 빨리 크렴』
/조정미·교사·부산시 진구 개금3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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