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월급쟁이 속마음 홍대리가 알지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월급쟁이 속마음 홍대리가 알지

입력
2000.02.02 00:00
0 0

당신의 직장 부하가, 또는 상사가, 혹은 옆 자리의 동료가 책장을 넘기며 혼자 키득키득거리고 있다면? 그는 아마 「천하무적 홍대리」를 읽고 있을지 모르겠다. 샐러리맨의 애환과 고민과 웃음. 우리의 친구 「홍대리」가 1년 만에 돌아왔다. 홍대리가 그려내는 직장과 샐러리맨의 모습은 보자.■차가운 초상, 따뜻한 세레나데

꼭 1년 전 첫 권이 나왔을 때 현직 직장인이 자기 경험을 바탕으로 만화를 그렸다는 점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 만화의 진수는 딴 데 있다.「홍대리」는 샐러리맨이라면 누구나 경험하고 느껴봤을 회사 생활의 애환을 재치있는 위트와 상상력으로 비틀어 알싸한 여운을 주는 탁월한 풍자만화다.

이 만화를 통해 직장인들은 『다들 이렇게 사는구나』라며 공감의 미소를 짓고, 답답한 조직생활의 일상을 꼬집는 데 통쾌해 하고, 또 한편으로 발가벗겨지는 자기 생의 한 단면에 페이소스를 느낀다.

만화에 갓 입문한 샐러리맨 홍윤표(32). 그가 자기 삶의 터전에서 건져올려 탄생시킨 단행본만화 「천하무적 홍대리 2」는 IMF 시대가 남긴 봉급쟁이의 차가운 초상이자, 경쟁의 속도에 지친 이들을 위한 따뜻한 세레나데다.

■게으름에 대한 동경?

홍대리의 아침은 출근과의 전쟁이다. 붐비는 대중교통 때문만은 아니다. 5분만, 3분만, 1분만 더 자자고 보채는 게으른 마음과의 전쟁이다. 출근하려는 홍대리와 조금만 더 자자고 조르는 홍대리의 분신들이 옥신각신 하는 것을 보면서, 이불 속 현실의 홍대리가 말한다. 『결론나면 깨워줘』(「나의 아침」) 그래서 늘 지각꾼이다. 회사에 나가서도 땡땡이 칠 궁리에 가득차 있다. 유체이탈까지 하며 땡땡이를 치려 하지만 부장은 귀신도 못 속이는 부장님이다.( 「유체이탈」)

어느 순간, 마음 한 구석엔 그 빠듯한 직장생활 속에서 잃어버리는 것들에 대한 회한이 슬며시 자리잡는다. 그 자리에 「게으른 홍대리」가 슬쩍 또아리를 틀고 진정한 삶의 질이 무엇인지를 되묻는다.

■조직의 이방인?

코트를 입고 홀로 바닷가를 걷는 홍대리. 하지만 부장의 소리가 들린다. 『사무실에서 외투 좀 벗어라. 안 덥냐?』 바닷가 풍경은 사무실 안에서 코트 입고 폼 잡은 홍대리의 몽상이었다. (「바다가 부른다」)

규격화한 일상의 시침 소리에 짓눌릴 때 홍대리는 회사라는 조직이 갑자기 낯설어진다. 그리곤 어릴 적 꿈을 꾸거나 모든 것을 떨쳐버리고 어디론가 떠나버리고 싶은 충동에 휩싸이면서 조직의 이방인이 된다. 하지만 그것은 샐러리맨이 생산의 도구나 소모품이 아님을 항변하는 작고 완강한 인간적인 몸부림이다.

그 반항은 시스템을 꼬집으며 차가운 웃음을 날린다. 부장은 『아니, 이것들은 어떻게 찾는 서류마다 잃어버려…』라고 호통치지만, 홍대리는 『아니, 어떻게 꼭 없는 서류만 찾어』라고 투덜댄다. 또 상사는 『도대체, 이 많은 보고서를 누가 만들지』라고 어리둥절하지만, 홍대리는 『대체, 이 많은 보고서를 누가 다 읽지』라고 비꼰다. (「상과 하」)

■부장의 호통소리?

홍대리의 야무진 꿈을 깨는 것은 언제나 부장의 호통소리다. 그것은 현실로 불러들이는 소리며, 조직의 소리다. 부장을 골탕먹이는 홍대리, 홍대리를 윽박지르는 부장. 그들의 옥신각신하는 실랑이는 웃기면서 서글프고, 서글프면서 애틋하다. 부장은 홍대리의 미래이고, 홍대리는 부장의 과거이다.

하염없이 흰 눈이 내리는 날, 부하 직원들은 업무도 잊은 채 모두 창가에 서서 내리는 눈을 보는데 정신이 팔렸다. 이들을 위해 부장은 혼자서 여기저기서 울리는 전화를 받는다. 『전화 좀 받아 이 웬수들아…』라고 투덜대는 부장.(「눈구경」)

■홍대리는 홍과장이었다

능글맞고 뻔뻔스런 「불량사원」 홍대리와 달리 홍윤표씨는 수줍고 귀여운 소년 같은 모습이었다. 만화광이었던 그는 대학을 졸업한 후 밥 벌어 먹고 살기 위해 회사(코오롱상사)에 취직했다.

어느날 아내가 덜컥 문화센터의 만화강좌 수강권을 끊어왔다. 그래서 98년 만화강좌를 들었고 그곳에서 로봇만화, 명랑만화도 그려봤지만 영 엉망이었다. 그래서 그냥 자기가 다니는 회사를 배경으로 그렸다. 그랬더니 그것을 본 동료가 재미있다며 회사 전산망에 올렸고 소문이 나 한 권의 책이 나왔다. 그렇게 그는 만화가가 되었다. 그사이 프랑스계 회사인 코제마코리아란 무역회사로 직장을 옮긴 그는 홍대리에서 홍과장이 되었다. /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 '직장인이 주인공' 만화 붐

직장인들의 애환을 경쾌한 웃음 속에 담은 직장인 소재 만화들이 최근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해 홍윤표의 「천하무적 홍대리」 강주배의 「무대리, 용하다 용해」, 김진태의 「체리체리 고고」 등의 단행본이 잇달아 출간되고, 일간스포츠에 방오만의 「아마걔돈」이 연재되는 등 신문에도 직장인 소재 만화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무대리, 용하다 용해」의 주인공은 작달막한 키, 곱슬머리에 아랫배가 튀어나온 무용해 대리. 회사에서 집에서 아래 위로 짓눌리고 구박당하지만, 무대뽀 무대리의 좌충우돌하는 회사생활은 배꼽을 잡게한다. 최근에는 CF에까지 무대리가 출연했다. 「체리체리 고고」는 신세대 직장여성 고체리가 회사에서 벌이는 기상천외한 해프닝을 담은 만화. 20-30대 직장여성의 감성과 생활모습을 영화, CF 등에서 차용한 웃음코드를 통해 유쾌하게 그려내고 있다. 「아마걔돈」은 증권사 직원 이대리를 주인공으로 증권투자와 관련된 풍속도를 재미있게 엮어내고 있다.

80년대엔 무일푼의 젊은이가 라이벌을 물리치고 재벌이 되는 식의 황당한 기업만화가 유행했지만 90년대엔 들어 허영만이 「미스터Q」 「세일즈맨」 등 샐러리맨의 세계를 파고든 작품을 내놓으며 직장인 만화의 깊이와 폭을 넓혀왔다. 직장인 만화의 대명사는 미국의 「딜버트」. 무명의 샐러리맨에서 만화작가로 변신한 스콧 애덤스가 그린 이 만화는 무소불위의 경영자에 대항해 풍자적인 수법으로 직장인의 애환을 풀어내 전세계 직장인의 호응을 얻었다. /송용창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