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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욱기자의 막전 막후] 그들만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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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욱기자의 막전 막후] 그들만의 전쟁

입력
2000.02.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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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트남전이 정말 그랬을 줄이야"『군인이든 양민이든 상관 없어. 명수(名數)만 채우면 돼』 폭우 속에서 작렬한 네이팜탄의 잔해가 시체처리병의 몸에 달라 붙는다.

극단 민예의 「그들만의 전쟁」은 한국 연극사 최초의 베트남전 이야기다. 영화나 TV 드라마 등을 통해 너무나 익숙해져버린 베트남전 특유의 스펙터클은 없다. 대신 이 전쟁이 남긴 참담한 현실이 생생하다. 사람들이 망각했거나 외면해 그들만의 전쟁으로서만 살아 있는 과거.

건달로 살다 참전 후 창고지기로 사는 장씨, 대학을 나오자 집안이 망해 어쩔 수 없이 베트남전에 참전한 김씨. 둘의 기괴한 놀이가 연극의 시작.

팔이나 다리가 날아 갔다며 신체 모형을 꺼내 와 그 부위에 놓아준다. 그것은 그들이 돈 벌기 위해 했던 시체처리 작업이다. 일당 1달러 50센트는 턱도 없어, 약간의 수당이라도 필요했던 그들. 머리나 사지가 떨어져 나간 시체를 수습해 원형 비슷하게 재생, 화장시키는 일로 한국군들은 돈을 챙길 수 있었던 것이다.

고엽제 에이전트 오렌지는 용병 한국군에게 들이닥쳤던 최악의 사태였다. 미군 비행기가 노란 물을 쏟고 간다. 찜통 속에서 제초 작업중인 한국군들은 『과연 미국은 위대하다』며 물을 뒤집어 쓰고 더위를 식힌다. 이로 인해 얼마나 처절한 일이 벌어졌는지를 연극은 섬뜩하게 증언한다.

귀국 후 결혼 해 얻은 아들에게 고엽제의 폐해가 고스란히 씌워진 것이다. 온몸이 썩어 문드러지고 생식력은 박탈됐다. 이 연극의 설득력은 베트남전을 현재의 질곡으로 푼 데서 나온다.

또 하나의 공신. 당시 전쟁을 몸으로 체험한 연출자 등 제작진이 하나 둘씩 보탠 에피소드 덕 또한 크다. 열살바기 월남 소녀가 살기 위해 몸을 팔러 접근하던 일, 하체가 날아 간 시체를 수습하던 일, 마을을 싹쓸이 하고는 넋이 나가 돌아 온 병사에게 『이제야 사나이가 됐다』며 축하하는 장교 이야기 등이 바로 그들에게서 나왔다.

『베트남전이 그런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못 했다』는 내용의 관극 소감은 제작진에게 큰 힘이 돼 주고 있다. 유진월 작, 강영걸 연출. 3월 5일까지 마로니에 극장. (02)744-0686

장병욱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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