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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포해지는 성범죄앞 왜소해지는 피해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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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포해지는 성범죄앞 왜소해지는 피해자들

입력
2000.02.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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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혼자 있는 당신에게 험상궂은 사내가 들어 와 행패를 부린다면? 다급해진 당신은 밀고 당기다 뜻하지 않게 그에게 큰 상처를 입힌다. 당신은 곧 결혼할 몸이다. 자수할 것인가, 아예 그를 감금해 버릴 것인가?극단 신화는 현대 미국 작가 윌리엄 마스트로시모네의 「치명적 선택」을 공연한다. 날로 흉포화해 가는 성범죄 앞에서 왜소해져만 가는 피해자들의 심리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다.

여자 도예가 민경이 혼자 사는 외딴 산기슭 도자기 작업실에 막노동꾼 영태가 들어 와 행패를 부린다. 당장 여인을 범할 태세다. 민경은 영태의 눈에 살충제를 뿌려 가까스로 위기를 벗어난다. 정작 사건은 이제부터.

결혼을 한 달 앞둔 그녀는 『증거가 없는 이상 나는 곧 풀려 돌아 와 복수할 것』이라는 영태의 협박에 약혼자 김교수의 신변이 걱정된다. 영태를 실신시켜 벽난로에 가둔 그녀는 신경이 극도로 날카로워져 석유를 끼얹고 불을 붙이려 한다. 그때 우연히 찾아 온 친구 주연이 애원하며 만류한다.

신입생 환영회 때 성폭행 당한 자신의 과거를 처음으로 털어놓고는 민경에게 『스스로를 파멸시키지 말라』며 애원한다. 이를 보고 부상 입은 영태가 『본심이 아니었다』며 변명을 늘어 놓기 시작한다. 두 여인의 태도는 갈수록 냉담해져 간다. 이에 영태는 발작을 일으키며 『모두 죽여버리겠다』고 날뛴다.

리얼리즘을 연극 최대의 미학의 핵으로 추구해 오고 있는 연출가 김영수씨의 섬세한 무대가 인상적이다. 박인서 한범희 최준용 권나연 이정인 등 30대 배우들의 열연이 돋보인다. 이 작품은 또 재즈를 배경 음악으로 사용, 극의 밀도를 드높인다. 분위기가 광포해져 가는 대목에선 오네트 콜먼 등 프리 재즈가, 침잠한 대목에서는 빌 에번스 등 재즈 선율이 극의 긴장을 높인다.

연출자 김씨는 『성고백 파문 등으로 최근 한국의 성 풍토는 불거져 가지만, 피해자인 여성들은 수치스런 조사를 외면하는 실정』이라면서 『성범죄의 증거제일주의를 돌아 볼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 작품의 모델이 된 실제 사건에서 강간범은 증거 부재로 무혐의 석방됐다. 1-3월 12일 문예회관소극장. 월 오후 3시, 화-목 오후 7시 30분, 금-일 오후 4시 30분 7시 30분. (02)923-2131

장병욱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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