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랭소칼의 '지적사기' 서평미국과 벨기에 물리학자 알랭 소칼과 장 브리크몽이 지은 「지적 사기」(원제 「Fashionable Nonsense」, 1997년)는 현대 프랑스 철학자들에 대한 전면적 비판으로 구미에서 커다란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90년대 들어 프랑스철학 열풍이 불고 있는 국내에서 이 책이 처음 번역 출판되자 반응이 뜨겁다. 프랑스에서 과학철학을 공부한 이정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가 이 책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보내왔다.
현대 사회의 한 특징은 상업주의, 선정주의, 한탕주의가 대중문화의 영역만이 아니라 예술의 영역에까지 스며들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에 출간된 한 저작은 이제 이런 흐름이 학문의 영역에까지 스며들고 있다는 두려운 느낌을 불러일으켰다. 소칼의 「지적 사기」는 위대한 인물들을 험잡음으로써 빗나간 명성을 얻으려는 소인배의 술책, 어떻게든 선정적인 물결을 일으킴으로써 돈과 이름을 얻으려는 상술, 자기가 무지한 분야에 욕설을 퍼부음으로써 스스로의 열등의식을 극복하려는, 인간 특유의 저질스러운 본능을 표출하고 있는 희대의 사기극이다.
이런 문화 상술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무시하는 것이 최상이다. 검찰이 개입함으로써 오히려 엉터리 문화가 세간의 화제가 되고 또 돈과 일시적인 명성을 얻게 되듯이, 이런 고도의 상술은 개입하면 개입할수록 그 상술에 말려드는 결과가 되는 것이다. 다만 내가 이렇게 개입하는 것은 일전에 번역했던 「의미의 논리」의 한 구절이 여기에 인용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점에 관련해서만큼은 번역자인 내가 한마디 해야 할 것 같다.
그런데 한마디 하려고 책을 펼치자마자 우리는 아연하게 된다. 들뢰즈(와 가타리)를 다루고 있는 것은 이 책의 203∼218쪽이다. 그런데 책의 구성을 보자. 206쪽 전체는 인용이다. 그리고 이 긴 인용에 대해 단 4줄의 「평가」(분석이나 논증이 아니다)가 따른다. 이것은 양반이다. 211쪽에서 214쪽까지는 무려 4쪽에 걸쳐(4쪽 전체를 빠듯이 채워) 인용이 이어진다. 그리고 이 4쪽에 대해 단 6줄의 평가가 이어진다! 그리고 「의미의 논리」를 1쪽 전체에 걸쳐
인용한 후 4줄의 평가가 따른다. 그 후 2쪽 전체에 걸쳐 가타리의 문장을 인용한 후 아무런 평가조차 따르지 않는다.
지금까지 수많은 책들을 읽어 왔지만 이 책만큼 어이가 없이 폭력적이고 무책임한 책은 본 기억이 없다. 4쪽을 인용으로 채운 경우도 처음 봤지만, 그 4쪽의 내용에 대해 6줄로 평가를 내리는 경우도 처음 본다. 아무런 논거도 없다. 아무런 분석도 없다. 아무런 이유도 없다.
「의미의 논리」를 다루는 부분을 보자. 이 부분은 이 책의 15계열의 한 부분으로서, 들뢰즈가 물질의 표면에서 발생하는 사건들(예컨대 우리 얼굴의 움직임의 표면에서 발생하는 「표정」, 물의 운동의 표면에서 발생하는 「부글거림」 등등)이 계열화되어 장(場)을 형성하는 과정을 특이성 이론을 통해서 논의하는 부분이다. 들뢰즈가 여기에서 막에 관한 이야기를 전개하는 것은 은유도 비유도 유비도 또 다른 그 무엇도 아니다. 그것은 물질 차원과 문화 차원(물질의 표면에서 발생하는 사건, 이미지를 의미로서 읽어내는 체계)이 접하는 접면(接面)을 다루기 위한 것이다.
그것은 현학적인 것도, 허세를 부리는 것도 아니다. 들뢰즈 이론이 전개되는 필연적인 과정이다. 그런데 철학과 자연과학을 철저하게 분리해 연구하는 데 길들여진 사람들은 이런 식의 논의를 「현학적」이라고 비웃는다(내가 쓴 「시뮬라크르의 시대」에 관련해서도 일부 사람들이 이 책이 수학적 그래프를 사용한 것을 두고서 「현학적」이라고 말한 바 있다). 비난은 자칭 「철학자」(비평가나 사회과학자가 아니라)라고 하면서 자연과학과 완전히 유리된 사변을 펼치는 사람들이 받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들뢰즈는 이 막 이론을 스스로 전개하는 것이 아니라 질베르 시몽동의 막 이론을 빌려온다. 오늘날 철학자가 물질 세계에 대해 직접 말하는 것은 일종의 오만이다. 자연과학자들이 이룩한 성과들을 부지런히 습득해 그 사유의 자원으로 삼는 것이 더 겸손한 태도인 것이다. 들뢰즈도 막 이론을 전개하기 위해 당대의 뛰어난 막 이론가인 시몽동의 용어들을 빌려왔음을 밝혔다.
그러나 「지적 사기」는 시몽동에 대한 언급도, 들뢰즈 당대의 프랑스 과학철학도, 또 「의미의 논리」의 구성도, 그 논리 전개의 과정과 맥락도 전혀 논하지 않는다. 그냥 한 쪽 전체를 인용한 후 단 4줄에 걸쳐 「논리와 의미가 결여되어 있다」고 되풀이할 뿐이다.
「지적 사기」는 일단 「떠야」 돈과 명성이 확보되는 선정적인 문화 풍토, 프랑스 좌파를 공격하는 미 제국주의자의 얄팍한 술책(사실 영미의 지식인들은 늘 「대륙」에서 창조적인 사상들이 나오면 헐뜯곤 했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과학에 대한 유치한 절대주의를 고수하는 삼류 인식론자의 상대주의 공격 등등이 모두 들어 있는 우리 시대 담론사의 창피스러운 흔적이다. 우리는 이 책을 「나도 때론 포르노그라피의 주인공이고 싶다」 같은 류의 책들과 동일선 상에서 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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