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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론의 산실] (4) 격월간 '녹색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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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론의 산실] (4) 격월간 '녹색평론'

입력
2000.02.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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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지 「문학과 지성」은 1977년 봄호를 내면서 오생근, 김종철 두 평론가를 새 동인으로 맞아들였다. 그로써 1970년부터 김병익 김주연 김치수 김현의 네 김씨가 이끌어온 「문지」의 편집 동인에는 또 한 사람의 김씨가 끼이게 되었다. 당시 성심여대에서 영문학을 가르치던 김종철씨는 그 이듬해인 78년 12월에 문학과지성사에서 첫 평론집 「시와 역사적 상상력」을 내놓았다.「시와 역사적 상상력」은 얼핏 문지적(文知的) 자유주의와는 어울리기 힘들어 보이는 강렬한 민중 지향성을 담고 있었다. 사실, 그 평론집이 창작과비평사에서 나왔다고 하더라도 아무도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오늘날 김종철(53·영남대 교수)씨를 「문학과 지성」과 관련시켜서 기억하는 사람은 드물다. 아니 제3세계 리얼리즘론을 포함해서 이런저런 문학적 담론들과 관련시켜서 그를 생각하는 사람도 많지 않다. 그의 이름은 무엇보다도 그가 지난 91년 11월에 창간한 격월간지 「녹색 평론」과 관련해서 거론되고 있다. 그러니까 80년대에 그의 세계관이 선회하고 있었다고 할 때, 그것이 안착한 곳은 흔히 「생명의 문화」 「도가적 상상력」 따위로 표현되는 환경생태론이었다. 「시적 인간과 생태적 인간」(1999·삼인)이라는 평론집으로 지난해에 대산문학상을 받은 그는 여전히 문학평론가이지만, 그 책에 모인 글들이 모두 환경생태론의 틀 안에서 자연에 대한 문학적 감수성의 근본적 전환을 꾀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는 문학평론가인 것 이상으로 전투적 환경 운동가다.

김종철씨의 녹색 세계관이 극복하고자 하는 두 개의 물신은 과학기술주의와 인간중심주의다. 그는 「녹색평론」의 창간호에 쓴 「생명의 문화를 위하여」라는 글에서 『기계론적 우주관과 선형적 진보사관에 의지하여 전개되어 온 지난 수세기의 근대 과학기술의 성과는 이제 인류의 파멸까지도 배제하지 않는 지구생태계의 대재난을 초래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해온 것이 아닌가』라고 물으며, 『삶의 태반을 망가뜨리면서 그것을 진보와 발전이라고 믿어온 것은 실로 우매의 극치라 할 만하고, 완전한 미치광이 짓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고 단언하고 있다. 사람 사이의 불평등한 관계에 주목하여 그것을 혁파하는 일에 주력해 온 전통적인 진보 사상도 김씨가 보기에는 인간중심주의 안에 갇힌 미흡한 사상이다. 그의 생각으로, 마르크스주의는 인간의 삶을 생산과 소비의 측면에 제한하여 본다는 점에서 부르주아 철학과 궤를 같이해 왔다.

환경생태론의 산실답게 투박한 재생지에 찍혀 나오고 있는 「녹색평론」이 2000년 1·2월호로 통권 50호를 채웠다. 「녹색평론」의 지난 아홉해는 경제든 정치든 문화든 교육이든 사회의 여러 부문·층위를 생태론적 관점에서 재조명하고 비판하는 작업으로 채워졌다. 50호 기념 메시지에서 간디 학교 교장 양희규씨가 말했듯, 「녹색평론」이 지향해 온 것은 「창조적 불복종」 「진리 앞에서의 단순함」이라고 할 수 있다. 주류 언론에서도 그 논의를 이어받아 공론의 마당에 펼쳐 놓은 수돗물 불소화 논쟁을 비롯해, 유전공학, 탈·학교 교육, 풍수사상, 자연식품, 지역 자치, 유기농업, 무역자유화, 외국인 노동자, 자동차, 보건의료체계, 대체의학, 컴퓨터, 원자력 발전소, 영어 교육, 도시, 텔레비전 등 산업화·정보화 사회의 핵심적 주제와 소재들을 다루며, 이 잡지는 줄곧 비주류 소수파의 목소리로 「창조적 불복종」과 「진리 앞의 단순함」을 이야기해 왔다. 그 「창조적 불복종」과 「진리 앞의 단순함」은 이반 일리치, 프리츠 슈마허, 루돌프 바로, 루이스 멈포드 등 이 잡지가 한국 독자들에게 소개해 온 근본주의적 생태론자들의 비순응주의(非順應主義)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녹색평론사가 있는 대구만이 아니라, 전북, 충북, 서울, 부산, 경남, 경기 등 지역별로 「녹색 평론」 독자 모임이 만들어져 활동이 꾸준히 이뤄지고 있는 것은, 이 잡지의 목소리가 허공의 메아리로 소진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겠다.

현대 기술 문명의 안락과 정보 사회의 속도감에 익숙한 사람들이 이 잡지가 전파하는 메시지를 온전히 수용하고 실천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이 잡지는 그 안락과 속도감 속에서 생태적 감수성을 잃어버린 우리들을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끊임없이 일깨워, 인간의 바람직한 삶의 모습에 대해서 궁리하게 만들 것이다. /

■창간사에사

『인류의 오랜 역사에서 삶의 우주적 연관이나 자연적 근거를 완전히 망각한 문화라는 것은 거의 낯선 것이었다고 할 수 있고, 사람의 에너지를 온통 소득과 소비의 경쟁 속에 쏟아붓도록 강요하는 오늘의 지배적인 산업문화는 인류사에서 극히 예외적인 생존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생태학적 위기로 요약되는 이 어처구니없기도 하고 끔찍스럽기도 한 사태를 극복하기 위해서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결국 우리들 각자가 자기 개인보다 더 큰 존재를 습관적으로 의식할 수 있게 하는 문화를 회복하는 일일 것이다. 우리가 생명의 문화라고 부를 수 있는 그러한 문화의 재건은 우리 각자의 인간적인 자기 쇄신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음이 분명하다.

현대 기술 문명의 기저에는 정복적 인간의 교만심이 완강하게 버티어 있다고 할 수 있다. … 자기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겸손을 실천할 수 있어야 하고 그러한 겸손에서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정신적 자질을 갖추지 않으면 안될 것으로 보인다』

고종석 편집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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