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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기행] (12) 고형렬 산문집 「은빛 물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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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기행] (12) 고형렬 산문집 「은빛 물고기」

입력
2000.02.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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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엄한 떼죽음의 하천은 신생의 자리고형렬의 산문 「은빛 물고기」는 연어의 생로병사에 대한 관찰과 명상이다. 300여 페이지에 이르는 이 글의 흐름은 깊고 느리다. 고형렬은 말을 걸 수 없는 것들을 향해 말을 걸고 있다. 말은 결국 걸리지 않고, 연어로부터는 아무런 말도 돌아오지 않는다. 고형렬의 글은 기나긴 독백으로 읽힌다.

물고기의 생태와 해부학적 구조를 인간의 분석적 언어로 치환해 놓은 결과물은 과학이라는 대접을 받고 있다. 이 과학적 결과물이 물고기의 본질적 성품과 어떤 관련이 있는가를 과학에게 묻는다면 과학은 거기에 대답하지 못한다. 연어는 왜 기어코 모천으로 돌아와서 죽는가라는 질문은 너무나도 큰 질문이어서 인간의 분석적 이성은 이 질문을 감당해 낼 수가 없다. 그 질문은 그래서 공허하고도 무내용하게 들린다. 그것을 연어의 「성품」이라고 말하는 것은 연어를 연어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인간의 언어가 몽매한 동어반복의 지옥을 헤매는 동안에도 알래스카 바다에서 되돌아오는 젊은 연어들은 기어코 극동의 조국, 한반도의 동쪽 하천으로 올라와서 알과 정액을 쏟아내고 암수가 함께 죽는다.

죽기에서 실패하는 연어는 없다. 종족의 한 세대가 다 함께 죽어서 허연 배때기를 뒤집고 쓰레기처럼 떠내려가면서 그 마지막 육신을 다른 물고기들에게 보시한다. 이 장엄한 떼죽음의 하천이 바로 신생(新生)의 자리이다. 그것들의 개별적 목숨은 종족의 영원성 속으로 소멸하는데, 이 소멸 안에서 삶과 죽음은 서로의 꼬리를 물고 있어 본래 구별되는 것이 아니다.

저절로 되어진 것들의 힘은 무섭다. 한줄기 조국 하천의 모성은 태평양을 건너간 내 자식들을 기어코 불러들여서 그 물 냄새 속에서 죽고 또 태어나게 한다. 연어들은 그 하천의 모성에 투항하고 귀순한다. 자연과학의 지식을 녹여내고 또 넘어서서, 운명에 투항함으로써 운명을 완성하는 업(業)의 두려움과 아름다움, 그 허무와 환희를 말할 때 고형렬의 글은 비통한 아름다움에 도달한다. 작년 봄에 양양 남대천, 삼척 오십천, 울진 왕피천을 떠난 연어 새끼

들은 지금 일류산 열도의 겨울바다 속을 지나고 있다. 그 겨울바다는 말의 길이 끊어지는 언어도단(言語道斷)의 바다다. 고형렬의 글이 그 언어도단의 바다를 건너간다.

겨울의 남대천과 오십천은 흰 눈에 덮인 산곡에서 완강하게 얼어붙어 있었다. 폭설이 내린 태백산맥 위에 또다시 대설경보가 내렸다. 눈은 세상을 다 덮어버릴 모양이었다. 강원도 삼척시 신기면 신기리는 북동으로 흐르는 오십천이 바다와 만나는 정라진 포구에서 23㎞ 상류 쪽으로 올라간 첩첩산중이다. 신기마을에서 오십천은 가파른 산들의 앞자락을 휘돌면서 급격한 파행을 이룬다.

이 마을 고인봉(92)옹의 집은 오십천 물가 언덕 위에 있다. 그의 기억에 따르면 60년대 말까지 연어 떼들은 이 깊은 산 속에까지 올라왔다. 냇물이 숨을 죽이고 낮아지는 가을날, 갑자기 물 속에서 수런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어린애 크기 만한 연어 떼들이 줄지어 산 속으로 올라가던 저녁 무렵을 회상할 때 그의 목소리는 떨렸다.

『정말로 대단했소. 물이 끓듯이 올라왔소. 며칠씩 계속 올라왔지. 마을 사람들이 다 물가로 뛰어나와 작살로 연어를 찍어댔소. 그 놈들은 제 죽는 자리가 따로 있소. 기어코 태어난 자리를 찾아가서 죽지. 알을 낳으면 바로 죽어서 허옇게 썩어 떠내려갔소. 새떼들이 내려앉아 썩은 연어들을 쪼아댔소』라고 그는 말했다.

그는 은둔하는 비결파(秘訣派)의 후손이었다. 그의 7대조가 세상의 환란을 피하고 생명을 온전히 보존하기 위해 이 깊은 산 속으로 숨어들었다고 한다. 『내 목숨 보존하고 자식 목숨 보존하는 것이 사람 사는 일이오』라고 그는 말했다. 그가 연어의 생노병사가 펼쳐지는 오십천 상류 물가에서 삶의 터전을 물려받은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닌 것 같았다. 『여기는 첩첩산중이오.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소. 연어들만이 찾아왔지. 그놈들이 다시 왔으면 좋겠소』라고 고 옹은 얼어붙은 냇물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오십천은 수중보로 첩첩이 막혔다. 연어는 이제 이 깊은 산골마을까지 올라오지 못한다. 아직도 눈이 덜 녹은 봄날, 성냥개비 만한 어린 치어들이 떼를 지어 산골마을을 떠나 바다로 향하던 아침의 그 안스러움을 고 옹은 기억하고 있다. 그의 시렁 위에서 연어잡이 작살은 하얗게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양양 내수면 연구소에서는 지금 30만 마리의 연어 치어들이 부화했다. 발육이 빠른 놈들은 이제 눈 덮인 야외 축양장으로 나와있다. 이 어린 치어들은 2월말에 방류된다. 내수면 연구소는 이 어린 치어들을 바다로 내보낼 때 태극기 앞에서 애국가를 부르며 이별과 재회의 의식을 치른다.

연어들은 곧바로 바다로 나가지 않고 한 달 정도를 남대천 하구에서 머문다. 이 한 달 동안 연어의 치어들은 어머니 강의 냄새와 풍속을 몸속에 각인시킨다. 그리고 나서 그것들은 바다로 나간다. 일본 북쪽 바다를 지나서 일류산 열도, 쿠릴 열도를 지나고, 알래스카 바다를 돌아서 베링해를 지나고 캄차카 반도 앞바다를 지나서 오호츠크해를 건너서 극동 조국의 남대천으로 돌아온다.

섬진강에는 멸종된 줄 알았던 연어가 해마다 5~6마리 정도씩 돌아오고 있는 것이 1997년 확인되었다. 내수면 연구소는 1998년부터 60만 마리의 연어치어를 섬진강에 방류했다. 이 연어들이 섬진강을 어머니의 강으로 여긴다면, 그 선발대는 2001년 10월에 섬진강으로 돌아올 것이다. 남강은 금강산의 남쪽을 흘러 동해로 들어가는 하천이다. 그 지류 한 가닥이 DMZ를 넘어서 남쪽에서 발원한다. 내수면 연구소는 이 남강지류에 96년부터 매년 5만 마리의 연어 치어를 방류했다. 그 선착대는 이미 지난 가을에 금강산 산 속으로 돌아와서 죽고 또 태어났을 것이다. 「연어들은 자신의 몸과 자신의 몸을 준 몸을 서로 마주보지 못한다. 이 끝없는 생명의 반복인 무명과 보시는 인연이고, 그 인연은 세상의 찬란한 허상이다」 라고 고형렬은 썼다. 조국의 연어들은 이 인연의 강을 따라 돌아오고 또 돌아온다. 죽음에 삶을 잇대어 가며 그것들은 돌아온다. 돌아와서, 생명의 기쁨과 생명의 허무를 사람들에게 알게 한다./김훈 편집위원

■고형렬의 문장들

_회귀의 약속을 지키는 연어들은 부사의(不思議)한 존재들이다. 오호츠크해까지 갔다가 살아서 남대천으로 회귀하는 연어는 남대천을 떠난 200마리 중에서 겨우 두 마리 정도다. 「나」라고 하는 이 허상의 껍데기는 이미 어디선가 죽은 존재일지 모른다. 진아(眞我)가 어디에 있는지를 모르고 죽은 자가 살아있는 것처럼 이 세상을 떠돌고 있는 것이 「나」인지도 모른다.

_여기 웅숭하고 넓고 아름답고 젊고 영민한 어머니가 있다. 신화적인 백경(白鯨)과 모든 연어들의 먼 조상이며, 아름답고 유려한 여성으로서의 어머니인 강은 바로 아시아 대륙의 가장 오랜 비밀과 뭇 목숨들의 숨결을 간직하고 콧구멍을 동북쪽 오호츠크해로 향하고 있는 시베리아의 대동맥 아무르강이다.

_그들은 목숨이 붙어있는 한 절대적으로 회귀한다. 오십천의 핏줄은 반드시 오십천으로 돌아온다. 현대성을 가진 거의 모든 지혜들은 지름길을 찾고 생략하려 하지만 연어들에게는 지름과 생략이 없다.

_그들의 뱃속에서는 병균이 자연 발생하듯이 알이 생긴다. 물론 그들은 내부에서 생기는 그 씨로 인하여 죽게될 것이다.

_아 얼마나 그들은 저 멀고먼 극동 남쪽의 작은 고향 하천의 물 속에 스며드는 자잘한 달빛조각들을 몸서리치게 그리워할 것이며 그들과 함께 놀고 싶을 것인가. 그들에게 태초부터 어떤 묵약이 있었기에 그들은 고향으로 되돌아가는 것일까.

_이튿날 아침에도 연어가 올라왔다. 그 다음날도 연어들이 올라갔다. 산이 조용한 것으로 보아 그들은 모두 실수하지 않고 잘 죽은 것 같다. 그들이 끝까지 갔다고 짐작되는 그 곳. 그 곳이 그들의 생이 다시 다른 생으로 이어지는 종(種)들의 대장례가 치러지는 곳이다. 그들은 가을의 장례를 치른다. 수천 마리가 함께 죽음의 문을 향해 들어오는 그들의 모습은 바라보는 사람의 입을 다물게 한다.

_산란을 마친 연어들은 물과 함께 떠내려가다가 마치 쓰레기처럼 한 곳에 쌓인다. 몸을 버리고 나서야 연어들은 비로소 알 길 없는 생사를 이룬다. 저들이 바로 산더미 같은 파도 속을 달려가던 연어들이었다.

_우리가 피안을 알 수 없는 것처럼 피안의 이쪽도 알 수가 없다, 이것은 불가해한 실재 같고 환(幻)과 같다. 생명에게 언제나 죽음은 처음 같고, 생의 갈망은 끝이 없다. /편집위원 김 훈

■고형렬(高炯烈)

1954년 해남 출생, 속초에서 성장

1979년 시 「장자」로 등단

시집 「대청봉 수박밭」 「사리원 길」 「성에꽃 눈부처」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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