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1월31일, 다음과 같은 보도가 있었다. 「쓸쓸한 설 비관한 50대 가장 음독 자살-3남3녀중 장남인 미화원 강모씨는 설에 꼬박꼬박 찾아오던 동생들(목수와 택시기사)이 IMF한파로 인한 생활고 때문에 찾아오지 못하자 괴로워하던 끝에…」 당시 설을 전후해 이처럼 가슴아픈 사건들이 많았다. 실직 가장들의 자살이 잇따랐고, 고향에 가지 못하는 처지를 절망한 30대 실직자가 집에 불을 지르기도 했다.■그해 설은 참으로 우울했다. 역대합실과 고속도로는 한산했고 그나마 고향을 찾는 귀성객들도 어깨가 축 처져 있었다. 시장과 백화점의 썰렁함은 꽁꽁 얼어붙은 우리 경제의 검버섯 같았다. 엄동설한에 폐업과 실직으로 거리에 내몰린 가장들, 설 휴가가 혹시 영원한 휴가가 되지 않나 싶어 직장문을 나서기가 두려웠던 감원 공포속의 샐러리맨들, 이런 것들이 바로 2년 전 이 나라의 설 세태였다.
■설이 돌아왔다. IMF이후 세번째 맞는 이번 설은 그때와 사뭇 다르다. 유통업계는 살아난 경기의 설 대목에 설레고 있고, 제조업체의 공장라인은 신나게 돌아가고 있다. 한 설문조사 결과 주부들이 이번에 선물비용으로 책정한 예산도 많이 높아져 가계사정의 호전을 보여주고 있다. 중소업체들이 입주한 전국의 공단 보너스 지급률도 IMF이전 수준으로 돌아갔다. 엊그제 같은 재작년 설 정경을 떠올리면 금석지감이다.
■새 세기의 첫 민족명절을 활기찬 기운속에 맞게 돼 다행이다. 그럴수록 옷깃을 여미고 자신과 주변을 돌아봐야 할 때다. 경기지표와 상관없이 빈곤층은 늘어났고 실업자는 여전히 IMF이전의 두배다. 그런 가운데서 흥청망청 풀어지는 정신적·물적 해이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98년의 설은 비록 냉랭했지만 국민의 의식이 살아 있었다. 자신과 나라의 장래를 진지하게 생각하고 새 설계를 다짐하는, 두레공동체다운 설이었다. 그때의 초심으로 돌아가자.
송태권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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