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논자는 『과거에는 「이념」이 영웅을 탄생시켰다면, 정보통신혁명 시대 이후에는 「시장(市場)」이 영웅을 만들고 있다』고 했다. 과연 인터넷에 기반한 시장은 종전의 개념과는 다른 영웅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빌 게이츠나 손정의 같은 사람들이다. 그 영웅의 대척점에는 누가 있을까. 영웅이 되지는 못하나 어떻게든 시장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대다수의 보통의 사람들을 지나, 시장의 영웅과 반대되는 극단에 서있는 이들. 그들을 「장인(匠人)」이라는 이름으로 불러도 좋을 것이다. 이청준(61)씨의 소설은 바로 이 장인들의 삶을 보여주는, 장인적인 작업이다.이씨가 8년 만에 10편의 중·단편을 모은 신작 소설집 「목수의 집」(열림원 발행)을 묶어냈다. 등단 이후 언제나 시대적 유행이나 지배적인 문학적 조류에는 상관없이 자기만의 작품세계를 구축해 온 그의 문학은 이번 작품집에서도 그 면모를 드러낸다. 이번 작품집을 수미상관하고 있는 것은 바로 「장인」의 삶과 「장인정신」의 문제이다. 장인정신이란 무엇일까. 평론가 이광호씨에 따르면 장인성은 「외부적인 큰 가치들과 관계없이 자기 분야 내부의 자율적 가치를 중시하는 태도, 다른 가치로 번역될 수 없는 고유한 영역의 미적 가치를 절대화하는 것」이다. 남들이 보기에는 아무리 하잘 것 없어도 자신의 영역에서 최고의 미(美)를 추구하는 인간이 바로 장인이다.
한 시인이 있다. 그가 누나의 권유로 주식투자에 빠져들게 된다. 처음에 시인은 그 덕분에 「생활에 활력을 띠기 시자했고, 연일 기분 좋은 긴장감 속에 모처럼 자신의 생산성을 실감」한다. 시인은 주식투자란 세상 전체를 상대로 싸워야 하는 피투성이 싸움이며, 세상 읽기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나 그는 결국 허욕과 집착으로 주식 투자에 완전히 실패한다. 주식시장이라는 극단의 욕망구조에 패하고 만 것이다. 그는 다시 이전의 시인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그는 「시를 쓸 수는 더욱 없었다」. 이씨의 소설 「시인의 시간」의 줄거리다.
작가가 한 시인의 주식투자 실패담을 통해 이야기하려는 것은 바로 장인정신의 문제이다. 시인은 주식투자를 하면서 자신의 「손에 잡히지 않는 시 작업」과는 비교할 수 없는 직접적 성취감을 느낀다. 시인은 「효율적이고 조직적인 정보언어 시대 속에서도 부질없이 자기 시간과 삶을 낭비하는 비효율적 비집단적 개인언어에 매달려 지내는 사람」이었다. 그는 주식투자에서 『힘들게 얻어낸 승부의 결실은 현실에서 아무 것도 보여줄 수 없고 증거할 수 없는 내 시작업보다 훨씬 더 안전하고 확고한 삶의 생산성을 보증해 주었다』고 말한다. 이씨는 이를 통해 장인이란 효율, 생산성이 삶의 척도가 아니라, 장인성의 추구 그 자체야말로 존재이유라는 것을 거꾸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씨는 표제작에서는 목조살림집만을 짓는 목수와 소설가, 「날개의 집」에서는 화가, 「빛과 사슬」에서는 남도소리꾼의 이야기를 통해 같은 문제의식을 추구하고 있다. 이런 이야기들이 다름아닌 소설가 이씨 자신의 글쓰기에 대한 반성적 사유와 통하고 있다는 것도 분명하다. 이씨는 이번 소설들이 『시간의 흐름 너머 휩쓸림 없는 삶의 진면목을 궁구해보고 싶은 소망을 간절히 혹은 허망스럽게 뒤좇은 자취』라고 말했다.
하종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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