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시민연대와 경실련 등 시민단체의 「낙천·낙선 명단」 공개파문 이후 정치권 등 권력기관의 「전화 한 통」이 크게 줄고 있다. 자칫 시민단체의 귀에 들어가면 「뜨거운 맛」을 볼까 두려워 몸을 사리기 때문이다. 또 주요 청탁대상 기관들은 『이번 기회에 아예 선을 긋자』며 청탁거부 지침을 마련할 태세다.우선 설 귀성 비행기표 청탁이 뚝 끊어졌다. 아시아나항공 관계자는 『그동안 국회 건설교통위 소속 의원 30여명에게는 명절 때마다 1인당 5장씩 총 150여장을 확보해 줘야 했다』면서 『그러나 설을 1주일 앞둔 30일까지 의원들의 청탁의뢰가 한건도 들어오지 않았다』고 격세지감을 절감하는 표정이다.
이와 관련,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명절민원 해결용으로 사용하던 특별기를 예년의 80-90편에서 40편 정도로 대폭 줄이고 「청탁은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법 제23조 거래상대방 차별대우금지 위반」이라는 내용의 공문을 직원에게 하달했다.
또 지난 해부터 인터넷 등 전산망을 통해 기차표 예매상황을 공개하는 철도청에도 요즘 정치인과 고위공직자 등의 표 청탁 관행이 사라졌다.
정치인의 전화와 보좌진의 발길이 적지않던 금융기관의 사정도 비슷하다. H은행 여의도지점의 한 관계자는 『4·13 총선을 앞두고 정치인들의 자금수요가 많을 것 같은데도 여야를 불문하고 대출부탁이 거의 없어 신기할 정도』라면서 『「소나기를 피하고 보자」는 식의 일과성 현상이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관공서나 기업체 등에 이어지던 압력성 인사민원도 눈에 띄게 줄었다. 신규점포 입점 때마다 골머리를 앓던 백화점 관계자들은 『앞으로는 정치인 청탁이 어려울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정치인들의 푸념도 적지 않다. 한나라당 P의원은 『국회의원들이 청탁을 많이 한다고 하지만 대부분은 지역구 민원』이라고 말했다. 표로 선출되는 「동냥벼슬」을 하는 탓에 지역구에서 쏟아지는 민원과 지인들의 부탁을 마냥 외면하기 어렵다는 하소연이다. 새천년민주당 K의원 보좌관은 『어른은 「당분간 청탁을 중단하라」고 하지만 지역구 등의 청탁민원이 그치지 않아 마치 샌드위치 신세가 된 기분』이라고 곤혹스러워 했다.
국회 건교위 소속 L의원 비서관은 『유권자들은 정작 어려운 일이 닥치면 법과 원칙보다 청탁을 통해 쉽게 해결하려는 경우가 많다』며 『시민단체 핑계를 대며 점잖게 거절하고 있지만 정치인이 안 되면 다른 통로를 찾지 않겠느냐』고 반문 했다./
안준현기자
dejavu@hk.co.kr
김태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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