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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준의 골프세상] 살의를 없애면 골프가 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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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준의 골프세상] 살의를 없애면 골프가 살아난다

입력
2000.01.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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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 내줘야지』 『한 번 박살 나봐라』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버리겠다』『지난 번의 패배를 깨끗이 설욕하겠다』 『본때를 보여줘야지』 『너, 오늘 임자 만났다』 『오늘이 너의 제삿날이다』 『옛날의 내가 아님을 증명해주마』골퍼라면 누구나 이런 결의를 다지며 골프장으로 향한 적이 있을 것이다. 구력이 꽤 됐는데도 이 같은 결의를 버리지 못하는 골퍼가 적지 않다. 이런 결의는 동반자를 혼내주겠다는 가벼운 살의다.

그러나 이같은 살의는 상대방을 혼내주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자신이 혼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마는 것이 현실이다. 오히려 상대방의 살의를 수용할 자세를 갖추면 의외의 좋은 결과를 얻는 경우가 많다.

살기등등한 파트너를 맞으면서 『그래 날 박살내려면 내봐, 내 실력껏 하지 뭐』하는 자세로 게임에 임하면 칼을 갈고 나온 상대방은 실수를 연발하며 무너지고, 대신 자신의 게임은 잘 풀려 기대밖의 성적을 거두기도 한다.

골프에서 최대의 적은 과연 무엇인가. 필자는 감히 말하고 싶다. 골프의 최대 적은 다름 아닌 적대감이라고. 골프가 만들어내는 온갖 상황과 맞닥뜨리면서 골퍼는 필연적으로 적대감을 갖게 된다.

적대감은 자신 이외의 모든 것들과 맞서는 대결구조를 만들고 이 대결구조에서 심리적 마찰과 갈등이 피어난다. 많은 골퍼들이 동반자는 물론 골프장의 온갖 상황과 날씨 같은 자연현상까지 적으로 삼아 주먹을 불끈 쥐고 달려든다. 결과는 참담함이 있을 뿐이다.

좋은 체격과 나무랄 데 없는 기능을 갖춘 프로골퍼들이 종종 게임을 뜻대로 운용하지 못하는 것은 바로 적대감에서 비롯된 이 갈등구조로부터 헤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특히 골프에서 갈등은 치명적이다. 갈등의 불길에 휩싸이면 마음과 육체는 혼란에 빠지고 평소의 리듬을 잃는다.

살의로 나선 18홀은 고통스럽다. 삼라만상을 적으로 돌려놓고서는 갈등구조에서 벗어날 수 없다. 내부의 큰 적을 놔두고 외부의 적을 상대로 골프를 하는 사람은 아무리 골프를 많이 해도 골프의 참맛을 알 수 없다. 마치 숟가락이 국맛을 모르듯이.

「큰 소리에도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물에 젖지 않는 연꽃과 같이, 저 광야를 가고 있는 코뿔소의 외뿔처럼 혼자 가거라」(최초의 불교경전「슛타니파타」중에서)

방민준 편집국부국장

mjb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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